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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통하였느냐?"

이균형 기자  2004.02.24 15: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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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였느냐?"란 카피로 유명한 '스캔들- 조선남녀 상열지사'가 개봉과 함께 흥행돌풍을 일으키며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충무로 얘길 하자는 것이 아니고 머나먼 서해안가에 빼어난 낙조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전라북도 부안 얘길 해보자.

노랑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쓰여진 '핵발전소 청와대에, 핵 폐기장 여의도에'라는 현수막을 비롯해 부안의 거리는 온통 현수막으로 넘치고 있다. 부안 격포에서 유람선으로 40분 정도면 도착하는 그림 같은 섬 '위도'에 방폐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사람살기에 으뜸이라는 '생거(生居) 부안'은 '생거 불안'으로 바뀌었다. 주민들은 백일이 넘게 핵폐기장 백지화 슬로건을 내걸고 생업을 팽개친 채 악다구니를 쓰고있고, 밤이면 도심으로 몰려가 촛불로 거리를 밝히고 있으며 이미 41일간 '등교거부 투쟁'도 불사한 마당이다.

그런데 이 싸움을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은 주민들이 보기에 극히 공평하지 못한 것 같다. 때문에 상당수 취재기자들이 집회과정을 취재하다 얻어맞고 카메라를 뺏기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얼마 전 부안 상설시장에서 주민들의 여론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인터뷰를 완강히 거절한 한 아주머니는 돌아서는 내 뒤통수에 "저것들 개야!"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왜 그렇게 이들이 언론에 열 받았을까를 고민해보다 한가지 문제점이 보였다. 바로 용어선택에서부터 중립성을 어겼다는 것이다.

부안 주민들은 한결같이 '핵 폐기장'이라는 용어를 쓰며 정부와 맞서고 있다. 그런데 당초 '방폐장'(방사능폐기물처리장)이라는 용어로 '부안사태'를 전하던 언론이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원전센터(원전 수거물 관리센터)'라는 말로 '방폐장'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에게 핵 폐기장과 방폐장, 원전센터를 놓고 무엇이 정확한 용어인가를 물었더니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왜 언론들은 느닷없이 '원전센터'라는 말을 등장시켰을까...

누가 듣기에도 '핵 폐기장'이나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은 '원전 수거물 관리센터'가 주는 안전성과 보드라운 느낌을 따라갈 수가 없다. 때문에 사업주최측과 정부로서는 궁여지책 끝에 '원전센터'란 용어를 선보였고 언론은 이를 생각 없이, 아니면 숙고(?) 끝에 받아 적고있는 것이다.

"아세요? 파란 하늘 몇 밀리램, 자연에서 부는 바람에 몇 밀리램, 그러나 원전센터에서는 연간 단 1밀리램..." 하면서 수시로 등장하는 광고 내용과 언론사 주최 각종 행사에 든든한 후원과 협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모습을 지켜보며 부안 주민들은 아마도 언론들이 심사숙고 끝에 '원전센터'로 받아 적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부안주민들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 그리고 언론을 번갈아 보면서 이렇게 묻고 있다.

"통하였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