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한 인간이 견뎌야 했던 고독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35m 크레인 위에서 129일간의 고독을 견뎌온 한 사내가 생을 마감했다. 지난 태풍 ‘매미’가 남해안을 강타하면서 부산항의 크레인이 넘어가던 시간, 그는 지프 크레인 위에서 홀로 버티고 있었다.
태풍도 거두어가지 못한 그의 목을 밧줄에 매달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죽음과 함께 두 장의 유서가 발견되었다. 태풍이 오기 전인 9월 9일자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번에 우리가 패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 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릴 수가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난 6월 노동부의 중재로 한진중공업 노사는 어렵게 합의에 도달했다. 하지만 회사측은 이 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노조원들을 상대로 150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하겠다고 나왔다. 퇴로를 봉쇄한 공세였다. 단순한 위협이나 빈말이 아니었다. 이미 91년부터 2002년까지 6차례에 걸쳐 조합원 113명에게 18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노조의 조합비 전액과 대상 조합원의 임금 절반을 가압류한 바 있는 회사였다. 가압류 대상에는 김주익위원장등 노조 간부 7명의 집까지 포함되었다. 이번에 또 보태지게 될 손해배상액 150억, 죽으라는 이야기 이외에 도대체 무엇일 수 있었을까.
어제보다는 나은 내일을 살아보겠다고 나섰다가 집과 월급을 압류당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참담함이 어떠한 것일지는 인간의 심장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의 가정은 이미 파괴된 것이다. 그들은 파괴된 삶을 견디고 있었다. 김주익은 파괴된 조합원들의 운명을 모두 짊어지고 크레인으로 올라갔다. 회사가 조합원들의 가정에 씌운 파괴의 그물 안에 그는 자신을 제물로 바치기로 한 것이다. 태풍 매미가 지나간 추석 다음 날, 10살 난 딸이 보낸 편지를 받았지만 그는 크레인 위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크레인 위에 있는 아빠께. 아빠 내가 일자리 구해줄 테니까 그 일 그만하면 안되요? 그래야지 운동회, 학예회도 보잖아요. 다른 애들은 아빠 자랑하는데... 내가 빨리 일자리 찾아줄께요. 파이팅! 참, 어제 무서웠죠?’
그가 129일의 고독한 시간을 견디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였는가. 우리의 대통령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무책임한 이기주의를 꾸짖었다. 언론은 강성노조가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눈을 부라렸다. 시대의 외곽에 버려진 인간의 운명에 대해 관심이 없기로는 문학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21년 근속하고 월 기본급 105만원을 받으면서 이기적인 ‘귀족’이라고 대통령한테 혼나고, 언론에게 매맞는 노동자들 얘기 따위를 써서 고상하지 못한 작가 취급을 당하고 싶어하는 바보는 우리 문단 안에 아무도 없어 보인다. 지금 한 고독한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대통령은 자신이 이 죽음에 기여한 책임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시대를 다루는 언론과 인간을 다루는 문학은 또 어떻게 이 사내의 고독했던 129일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고독했던 그의 129일이 던져주는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는 있었다. 노동자들! 당신들의 문제는 당신들이 해결하라. 누구도 당신들의 벗일 수 없다는 고독이 당신들의 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모두의 벗이 되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된다고 나는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