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잇단 노동자 분신 언론도 '유죄'

무분별한 손해소,가압류 반짝 관심 노사분쟁 원인 분석 없고 현상만

박주선 기자  2004.02.24 15:55:53

기사프린트

“노사관련 기사에 '인간'은 온데간데 없다. 오직 경제적 관점이 난무한다.”

유장현 금속산업노조 부산양산본부 사무국장은 언론의 관심이 조금 더 일찍 있었더라면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 위원장은 크레인 위에서 129일간 고공시위를 벌이면서 사측의 손해배상청구소송 및 가압류 조치의 부당함을 외쳤지만 대다수 언론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관련내용은 조선일보가 ‘올 하투 예전과 다른 움직임/“목소리 커야 통한다” 점점 과격화’ 기사에서 ‘과격노조’의 한 예로, 세계일보가 ‘민노총 파업…곳곳 생산차질’에서 생산차질을 빚은 사업장으로 짧게 언급한 정도다.

그러나 정작 노조 파업에 대해 '왜'를 묻는 언론보도는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 8월 사측이 울산공장 직장폐쇄 신고를 했을 때도 언론은 '한진중 울산공장 직장폐쇄 신고'(경향, 대한매일) ‘한진중 울산공장 직장폐쇄…사측 “장기파업 경영 차질”(동아) '"더 밀릴 곳 없다" 재계총반격'(문화) ‘한진중 울산공장 폐쇄’(조선) 등으로 ‘직장폐쇄’ 소식을 단순 보도했을 뿐이었다. 다만 지난 1월 한겨레가 “한진중공업 노조가 회사측의 손배소와 재산 가압류 중단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에 들어갔다”고 파업 이유를 알렸다.

지난 18일 민주노동당 진상조사단 일원으로 현지에 다녀온 김정진 변호사는 "사측은 김 위원장의 유일한 재산인 5000만원 상당의 낡은 주택까지 가압류하는 등 노조탄압을 했지만 언론에는 대기업의 노동귀족 등만 부각돼 고립감을 심화시켰다”며 “일방적으로 노조편을 드는 보도가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왜'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한진중공업의 본질적인 문제는 조합원에 대한 사측의 무리한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가압류 조치였다는 점에서 언론의 냄비식 보도태도 역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지난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씨 분신사망 당시 언론은 ''손배소-가압류'' 신종 노동탄압(경향 세계) '노조원상대 손배?가압류/신종 노동탄압 비판일어'(문화) '노조상대로 가압류?손배소송 봇물'(조선) '임금뿐 아니라 친척 집?선산까지 가압류/손배소송은 노동자 연좌제'(한겨레) '노조상대 손배?가압류 50개 사업장 2,200억 달해'(한국) 등 사측의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가압류가 ‘신종 노조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러나 두산중공업 노사협상 타결 이후 손배소 및 가압류 문제를 여론화하거나 해법을 모색하는 언론 보도는 자취를 감췄다. 예컨대 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가압류 남용을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 입법청원한 뒤 수개월째 심의조차 되지 않고 있지만 이를 여론화하는 보도는 찾기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김주익 위원장의 자살과 노동자들의 분신이 잇따르자 ‘한진중, 노사갈등 확산 우려된다’(경향) ‘노조위원장의 안타까운 죽음’(대한매일) ‘왜 자살 분신 이어지는가’(문화) ‘줄잇는 노동자 자살에 정부는 뭐하나’(한겨레) 등 가압류, 비정규직 문제를 거론하는 언론의 태도는 ‘뒤늦었다’는 아쉬움을 준다. 게다가 ‘자살투쟁은 결코 옳지 않다’(국민) ‘극한 투쟁밖에 길이 없나’(동아) 등 일부 언론은 가압류 등의 문제와 투쟁방법 모두가 옳지 않다는 양비론을 펴기도 했다.

손낙구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배달호씨 분신 직후 언론은 사측의 무리한 손배소, 가압류에 대해 냄비 끓듯이 문제삼았지만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았는데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사회의 약자에 대한 언론의 역할을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박주선 기자 su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