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가 드디어 옴부즈맨을 임명했다. 직책 이름은 퍼블릭에디터이고, 일은 12월부터 시작한다. 이 신문이 옴부즈맨을 임명하기는 창사 152년만에 처음이다. 이번 조치는 역시 지난 5월 기사 날조와 다른 신문기사 표절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제이슨 블레어 사건이 계기가 됐다. 18개월의 계약직으로 채용된 사람은 다니엘 오크엔트. 오랫동안 주로 잡지와 출판에 종사했던 인물이다.
미국 언론계와 학계는 뉴욕타임스의 이번 실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방식의 독립성을 제공하지 않은 데 대한 비판 의견도 제시된다. 편집이사가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까를 염려하는 시각이 있고, 정례 칼럼을 약속하지 않은데 대한 걱정도 있다.
이러한 논의를 뒤로 하고 한국 언론을 들여다보면, 한국식 옴부즈맨 현상을 만난다. 이미 5∼6년은 족히 지난 상황이지만, 한국 언론계에는 옴부즈맨 없는 옴부즈맨 칼럼이 계속 번성한다. 중앙일보 경향신문 국민일보는 옴부즈맨 칼럼이란 이름으로 정례칼럼을 게재한다. 대한매일에는 편집자문위원 칼럼이 있고 동아일보에는 독자인권위원회 관련 기사가 실린다. 정식으로 고용된 옴부즈맨이 없는데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하고 그러한 글들의 기능은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국 언론의 옴부즈맨 칼럼은 좋게 보면 기막히게 창의적인 제도의 운용이지만 나쁘게 보면 근본적으로 독자를 우롱하는 저급한 홍보전략으로 밖에 정리가 안된다. 옴부즈맨은 이름을 무엇이라 하든 독자를 대신해 기자와 편집자 그리고 신문사를 감시하는 내부비평자로 정의된다. 언론이 기본적으로 도덕적 직업이기 때문에 오염적 행위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로 도입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제대로 옴부즈맨으로 기능하려면 철저한 독립성과 일에 대한 전문적 식견은 너무도 당연한 일차적 조건이다. 과거 워싱턴포스트에서 옴부즈맨으로 근무한 조안 버드는 자신이 하루에 신문을 읽는 데만 8시간을 투자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워싱턴포스트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한국 언론에 이렇게 일하는 옴부즈맨이 있는가? 변호사로 자기 사무실을 갖고 있고 교수로 학생을 가르쳐야하거나 시민단체 상근 간부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 8시간씩 한 신문을 읽고, 또 독자들의불만을 접수해 처리하는 옴부즈맨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가? 더구나 칼럼의 내용이 어떠어떠한 기사가 돋보였다거나 의미있는 시도였다는 방향으로 가기 일쑤라면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제발 옴부즈맨마저 신문판매의 도구로 타락시킨 부끄러운 관행을 하루라도 빨리 중단하기 바란다. 한국식 옴부즈맨 칼럼은 독자에 대한 서비스가 아니라 모욕에 가깝다. 그래도 계속 옴부즈맨 칼럼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이제라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보직을 만들어 사람을 채용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