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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엔 언론이 없다

폭력 • 강경대응만 강조• • •사태악화 '일조'

서정은 기자  2004.02.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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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폐기장 관련 부안 사태가 혼전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며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부상자가 속출하는 격렬한 시위가 발생해야 지면을 할애하는 기존 관행이 되풀이되는 것도 문제지만 갈등이 벌어진 원인과 이유, 과정은 사라지고 시위의 폭력성과 정부의 강경대응만 강조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주민투표 결렬 이후 지난 17일 부안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와 관련, 일부 언론은 사태의 책임을 ‘주민 탓’으로 돌리며 정부의 강경한 시위 진압을 요구했다. 그러나 부안군민의 저항을 불러온 근본 원인이 정부의 말바꾸기와 시간끌기 등 졸속 행정에 있다는 대목은 언급하지 않아 편향적인 보도태도라는 지적을 사고 있다. 실제로 동아일보는 19일자 사설 ‘화염병 던지며 주민투표 요구하나’에서 “정부는 부안에서 폭력시위로 압박하는 대화에 더 끌려다녀서는 안된다”며 정부의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중앙일보도 같은날 사설에서 “과격한 시위로는 어떠한 성과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부안 핵폐기장 다시 ‘핵충돌’’ 기사에서 “사태는 정부가 17일 연내 투표불가 방침을 공표하면서 격해지기 시작했다”고 보도했으나 협상 결렬과 부안군민의 격렬 시위에 비중을 실었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시위가 격해진 원인이 정부에 있다는 점을 지적해 대조를 이뤘다. 경향신문은 19일자 ‘기자메모-말바꾼 정부, 격해진 부안’에서 “부안 군민들이 ‘연내실시’ 조건을 달아 주민투표를 수용하자 정부에서 오히려 발을 빼고 있다”며 “주민투표를 제의할 때는 장난이었단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도 같은날 사설에서 “대책위가 주민투표안을 마련해 정부에 내놨으나 정부가 이를 거부함으로써 화염병과 휘발유, 농기구들이 등장하는 격렬한 시위가 다시 벌어졌다”면서 정부의 태도에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같은 보도태도는 부안 사태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주민투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차이를 드러냈다. 동아는 19일자 사설에서 “국회에 계류중인 주민투표법이 통과된 뒤 시행령까지 만들려면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내 실시 요구는 무리…다른 국책사업에도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한겨레는“(주민투표를) 정부가 일단 수용하고 절차나 시기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문화와 국민도 긍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논조를 폈다.

그러나 부안군민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주민투표를 둘러싼 정부 입장이 계속 혼선을 빚으면서 ‘주민 탓’으로 화살을 돌렸던 언론 보도 역시 주춤하는 양상을 보였다. 동아는 지난 22일 ‘부안 왜 과격해졌나-안일한 정부대응 강경론 키워’에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이라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며 뒤늦게 정부의 태도를 지적하고 나섰다. 또 시위가 격렬해지고 사안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각 언론들은 뒤늦게 정부의 적극적인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사설과 현지 민심을 전하는 르포기사를 내보내는 등 부안 사태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그렇지만 100일 넘게 진행된 평화적인 촛불시위와 부안 주민들의 목소리에는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았던 언론이 대안 제시와 갈등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방기했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동섭 한양대 신방과 교수는 “언론이 부안 사태의 본질과 진실을 규명하기보다 시위 사태에 초점을 맞추면서 결국 ‘원인’과 ‘과정’이 생략된 채 진실과 동떨어진 보도가 나오고 있다”며 “언론의 속성상 눈앞에 터진 사건에만 급급하면 중요한 맥락이 사장되고 마치 폭력이 사태의 본질인 것처럼 왜곡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또 “언론의 사실?진실보도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기능도 필요하다”며 “강자를 견제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할 언론이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고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서정은 기자 punda@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