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면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다. 사실 나는 지난달로 이 지면을 떠났어야 했다. 원래 6개월 동안 쓰기로 한 이 지면에 머무른 것이 지난달로 1년이 되었다. 앞서 6회를 더 써달라는 청탁에 내가 동의해주었던 것을 구실로 이번에는 내가 한 번은 더 써야할 것이 있다고 요청을 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언론과 노무현 정권이 서로 주고받고 있는 비판의 부적절함,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이 지면에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다.
언론, 특히 여론 장악력이 높은 주요 일간지들은 노 대통령과 그 주변을 향해 지속적인 공세를 펼쳐왔고, 노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을 실행해나가는 가장 큰 훼방꾼으로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과 더불어 언론을 지목해왔다. 대통령과 보수언론과의 대결은 이미 선거과정에서부터 예견되어왔다. 권력의 잘못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이 언론의 고유한 역할이듯이 정권이 언론의 부당한 횡포에 대해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 지금 이것이 문제가 된다. 그 태도와 내용이 매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양비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그 주된 책임은 노 대통령과 그 핵심측근들에게 있다. 보수적인 언론 때문에 국정이 표류하고 있다고 여기는 대통령과 그 측근들, 그리고 노사모로 대표되는 그의 열성적 지지자들의 생각과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도대체 노무현 대통령의 어떤 정책이 보수적인 언론에 의해서 좌절되었는가. 돌아보자. 대북송금문제에 대한 특검, 이라크 파병, 민주노총과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정책, 부안핵폐기장 강행…. 노 대통령이 추진한 주요 국가정책은 한결같이 보수적인 언론의 입장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발목을 잡기는커녕 보수적인 언론이야말로 그의 정책을 뒷받침해준 가장 굳건한 기반이었다. 아닌가. 아니라면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다. 보수적인 언론의 주장을 투철하게 집행한 주체가 노 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주요정책은 조금도 진보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은 더욱이나 민주적이지 않다. 국민여론을 중시하겠다고 한 이라크파병 문제를 결정하면서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의 여론을 중시했는가. 미국인가 한국인가. 부안핵폐기장 문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 보수적인 언론 때문인가, 아니면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한 데서부터 비롯된것인가. 보수적인 언론과 ‘다만 감정적으로’ 대결하고 있을 뿐인 것을 가지고 노 대통령과 그 측근, 그리고 그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보수와 힘겨운 대결을 하고 있다는 심한 착각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그 다음으로 책임이 있는 쪽이 언론이다. 언론도 다 같지는 않으므로 그 차이를 두어 말하자면 보수적인 언론을 비판하는 진보적인 언론, 아니라면 최소한 보수에 동의하지 않는 언론에게 먼저 책임이 있다. 진정한 언론은 문제의 현상과 결과뿐만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밝히고 비판하는 것을 통해 시대정신을 바로잡아 가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다. 어떤 언론이 지금 노무현 정권이 겪고 있는 혼란을 제대로 파악하고 매서운 비판을 하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책임이 있는 것이 노 대통령과 ‘다만 감정적으로’ 대결하고 있는 보수적인 언론이다. 실질적으로 자신의 입장과 견해를 가장 잘 반영해주고 있는 노 대통령과의 ‘감정적’ 갈등 때문에 ‘보수’가 역사에서 맡은 최소한의 긍정적 기능마저 이들 언론이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문제의 핵심은 너무도 맥없이 미국의 패권주의와 보수 기득권 세력의 주장에 굴복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정책과 절차적 민주주의의 결여에 있다. 마땅히 설득하고 타협하고, 협력해야할 대상들을 스스로 외면하거나 적대시하고 ‘나홀로’ 돌파해나가려다 막히면, 그 책임을 보수적인 언론에 떠넘기는 태도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노무현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