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8일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5번 출구. 세계일보 류순열 문화생활부 차장은 ‘걸인의 눈으로 본 강남의 오늘’을 취재하기 위해 직접 ‘걸인’으로 나섰다. 지난 10월 서울 번화가에서 우연히 만난 5명의 장애 걸인을 보고 “방치수준에 머물러 있는 복지정책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류 차장은 그들의 현실을 보다 가까운 곳에서 느끼기 위해 직접 ‘걸인 체험’을 하기로 했다.<사진>
그가 완전 범죄(?)를 성사시키기 위해 준비한 소품은 낡은 모자와 옷가지 그리고 라면박스가 전부였다. 찬 바닥에 앉은 순간부터 류 차장은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나는 강남 최고의 걸인이다.” “나는 구걸하지 않으면 굶주린다”.
하지만 류 차장이 느낀 것은 찬 시멘트 바닥만큼이나 지나가는 행인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예상보다 훨씬 심한 수치심으로 온몸을 엄습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포기하고 걸인들을 구걸로 몬 것은 무엇일까? 저린 발을 이끌고 압구정역을 나오며 류 차장은 “구걸은 무위도식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마지막 생계 수단이자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짓이라는 것”을 느꼈다. 류 차장이 이 날 걸인 체험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은 1만880원.
류 차장은 일회성 체험기의 낭만적 감정을 떨치고 현실적인 대안도 잊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의 예산 및 시설확충과 함께 걸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번 체험은 그에게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보다 따뜻한 시선이 기자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