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자식을 외국에 유학 보내고 홀로 한국에 남은 아버지, 일명 기러기아빠. 언론계에도 이 기러기 아빠들이 적지 않다. 특히 특파원이나 해외연수로 외국에 체류할 기회가 많은 언론인들의 경우 가족들과 함께 외국에 나갔다가 현지에서 학교에 다니던 자녀들이 교육과정을 마치기 위해 홀로 귀국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연합뉴스의 한 부장은 지난 2000년 1년간 미국 연수를 갔다가 2001년부터 기러기아빠 신세가 됐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된 딸이 계속 현지에서 공부하기를 원했기 때문. 이 부장은 “외롭다가도 한국의 입시교육이 문제가 될 때마다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비와 생활비 등 미국 체재비를 마련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부장 역시 아파트를 줄여서 전세 차입금으로 그럭저럭 생활하고 있다. “2년 반쯤 지나니까 외로운 것은 어느 정도 극복이 되더라고요. 매일 전화하고 메신저도 하니까 스킨십은 없지만 오히려 대화를 많이 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적응이 됐다는 얘기다.
문화일보의 한 중견기자는 현재 호주 영주권을 받으려고 준비중이다. 영주권을 받으면 공립학교나 병원비가 모두 무료고, 부인이 현지에서 직장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년 반정도 지났는데, 무엇보다 경제적 부담이 커요. 월급을 하나도 안 쓰고 보내도 모자랄 정돕니다. 그러나 당장 이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 기자는 지난해 부인과 함께 현재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두 자녀를 호주로 보냈다. 여기서 10대를 보내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교육부 출입하면서 우리 나라 학원교육에 질렸어요. 사실 대안학교에 보낼까 생각했는데, 그건 부인이 반대했습니다.” 이 기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교육 시키려고 조기유학 보냈다”고 생각하는 주변의 시선이 달갑지 않다.
중앙일보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는 다른 기러기아빠들에 비하면 상황이 좋은 편이다. 부인이 미국에서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 김 기자는 지난 2000년 겨울 부인이 워싱턴 조지타운 대학의 연구위원 자리를 맡게 되면서 당시 중학교 1학년을 마친 아들을 따라보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본인이 원했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진용학 사진부차장도 2년 6개월 째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다. 부인과 올해 초등학교 3학년, 6학년인 두 자녀는 지난 2001년부터 뉴질랜드에 있다.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진 차장은 “가끔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제 담담해졌다”며 “평일에는 바빠서 정신이 없고, 보통 주말에는 운동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한편 장애에 대한 편견 때문에 할 수 없이 부인과 아이를 외국에 보낸 경우도 있다. 정창교 국민일보 사회2부 기자는 2001년 자폐성 장애가 있는 큰 아이가 초등하교 1학년 때 차별 받지 않고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미국에 보냈다. 그러나 언어 문제 등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6개월만에 돌아왔다고 한다. 정 기자는 “아이들 보내놓고 월세 방 하나 구해 컴퓨터 침대 놓고 지냈다. 애들하고 떨어져 지내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가족들을 멀리 떠나보내고 혼자 생활하는 기러기 아빠들이 가장 힘들 때는 아무래도 몸이 아플 때다. 올해 초 기러기 아빠 신세를 면한 이의춘 한국일보 경제부 차장도 “아프고 우울해질 때 가장 힘들다”며 “회사 일로 스트레스 받을 때, 집안 행사에 혼자 내려갈 때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제적인 부담은 기러기아빠들의 공통적인 과제. 이 차장 역시 “공과금 빼고 월급 받은 거 다 보내고, 집 저당 잡혀 4000만원 대출 받았다”며 “1년 6개월간 부인과 자녀 둘이 미국에서 생활하는 데 학비, 생활비를 합쳐 총 1억 정도 소요됐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또 “생활이 무너지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매일 5시에 일어나서 운동 다니고, 영어 학원도 다녔다”면서 후배 기러기아빠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절제”라고 당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