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프로그램 중에 PD가 만들지 않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뉴스프로그램이다. 방송기자들은 현재 취재, 기사작성, 편집, 그래픽 등 복잡한 뉴스 공정과정을 도맡으며 사실상 기자 겸 PD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사회는 방송뉴스에 점점 더 큰 차별성, 더 다양한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제작부담에 짓눌려 취재에 몰입하지 못하는 방송기자들에게 탈출구는 없는 것일까? 뉴스PD제가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SBS 8시 뉴스는 지난 해 가을부터, KBS 뉴스투데이는 올해 봄부터 각각 4명과 9명의 뉴스PD를 기용했다. MBC는 전무 직속의 뉴스&정보프로그램 추진팀을 구성해 전문기자제와 뉴스 차별화를 지원할 시스템으로 뉴스PD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뉴스PD제가 각 사마다 인력구조와 뉴스 성격에 따라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SBS 8시 뉴스'에서 뉴스PD의 역할은 원재료의 가치를 높이는 요리사에 비견된다. 이웅모 8시뉴스 CP는 "40분의 뉴스시간 동안 이완과 긴장을 반복하면서 처음부터 끝 아이템까지 시청자의 흥미를 유지하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또 "재미, 정보, 의미 3박자가 맞는 날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그러려면 당연히 기자가 마련해 놓은 원재료가 좋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완과 긴장'이 있는 뉴스 구성을 위해 이 CP는 아침 편집회의 때부터 시사 이슈뿐 아니라 정보, 미담거리도 함께 기획해 배치한다. 남은 아이템 중 흥미로운 뉴스를 간추려 소개하는 중간 예고 코너, 음악과 그래픽으로 뉴스의 마지막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내일의 날씨 코너, 적절한 타이밍에 번갈아 등장하는 남녀앵커 등도 뉴스프로그램에 변화를 주는 요소로 사용된다. KBS의 한 뉴스PD는 이를 '시청자를 아는 편집'이라고 평가했다.
SBS 내에선 특히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팀이 기자-PD 시너지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박병일&'팀은 기자-PD-구성작가가 함께 기획, 제작하면서 아이템 자체의 완성도를 크게 향상시켜 새내기 기자들의 교본으로 불릴 정도다. 현재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종교재단 JMS 비리, 병무 비리 등을 제작하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장경수, 남상문 PD도 '박병일&'팀 출신이다.
KBS 뉴스투데이팀의 뉴스PD들은 기자처럼 취재부터 리포트, 제작까지 도맡는 '팔방미인'형이다. 기존의 방송기자들이 'PD기자'였다면이들은'기자PD'인 셈이다. 그러나 여기엔 남다른 속사정이 있었다. 같은 시간대의 SBS뉴스나 자사의 9시 뉴스와 다른 뉴스를 만들려면 별도의 취재인력이 필요한데 기존의 보도국 인력도 부족한 실정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기자와 PD의 융합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고 있다. 뉴스투데이팀의 윤진규 PD는 "기자의 정보력과 PD의 편집감각이 시너지효과를 준다"고 말했다. 기자와 PD가 서로 다른 취재, 제작 방식을 보면서 서로 배우고 보완한다는 것이다. 가령 PD는 그림과 현장음부터 살려 편집한 후 원고를 쓴다. 반대로 기자는 작성한 기사원고에 맞춰 그림을 편집한다. 이런 차이점에서 PD는 검찰, 경찰 등 사회조직을 파악하고 정보를 다루는 능력을 배우는 한편 기자는 현장성, 즉 '그림'과 '소리'를 살리는 능력을 배운다. SBS의 이웅모 CP는 "조계사 사태 때 그림이 됐지만 새로운 메시지가 없어 우리는 살리지 못했는데 뉴스투데이는 긴 아이템으로 그림을 살리고 사건의 흐름과 배경을 설명해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뉴스투데이는 좋은 경쟁자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뉴스PD제가 우리 방송의 보편적 시스템으로 정착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기자들의 중론이다. KBS의 한 부장은 뉴스투데이의 PD들은 엄밀한 의미의 뉴스PD는 아니며 KBS에서 뉴스PD제는 아직 정착단계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 부장은 "뉴스PD는 뉴스프로그램의 전체를 기획해 통째로 만드는 것"이라며 "뉴스PD만의 독특한 기능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출입처 중심 취재시스템, 부서 중심의 보도국 조직으로는 뉴스PD제를 전면 도입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87년 'KBS 와이드정보 700'이 뉴스PD제 방식을 도입해 시청자들의 폭발적 호응을 얻고도 경영진의 외면 속에 폐지된 것도, KBS가 94년부터 3기수에 걸쳐 뽑은 뉴스PD들이 전문 영역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기자나 보도제작국 PD로 흡수된 것도, 또 MBC가 89년부터 뉴스PD제를 보도국 업무개선의 숙원사업으로 추진해왔지만 아직까지 도입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다. 뉴스PD 출신의 한 보도국 기자는 "출입처제 관행을 가지고 있는 한 서구식의 뉴스PD제 정착은 미지수"라고 말했다. 가령 청와대를 출입하는 10년 위의 선배와 청와대 관련 리포트를 제작하는데 뉴스PD가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지시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MB뉴스&정보프로그램추진팀의 조헌모 팀장은 "무엇보다 기자들이 뉴스PD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며 "신문사 편집국같은 부서 중심 편제부터 프로그램 중심 조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들도 그래야 뉴스도 하나의 방송프로그램이라는 마인드를 가질 수 있고 뉴스PD의 필요성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취재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도화되지 않으면 우리 방송뉴스는 진보는커녕 오히려 점점 낙후될 것이라는 것이 조 팀장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