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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뉴스 많지만 본질은 하나, '세상의 눈'으로 봐야

"친구, 숨가쁘게 달려온 한해였네"

김진수 기자  2004.02.25 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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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술자리가 많은 연말이야. 나도 어제 몇몇 선후배들과 통음을 했다네. 자네가 그랬지? 언제부턴 지 술자리가 별로 즐겁지 않다고 말이야. 괜히 아무개 기자 어쩌고 하면 주변 사람들의 눈길이 차가워지더라고. 후후. 나도 어제 그런 기분 경험했네. 입사 3년차의 파릇한 후배가 약간 꼬부라진 혀로 "선배! 그래도 우리 기자들은 사명감이 있지 않습니까?"라며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동의를 구할 때 옆자리의 손님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싸늘한 표정을 날리더군. 끙. 순간 내 뺨이 불끈불끈했네. 어금니를 두어번 꽉 물었기 때문이었지. 난 말없이 그 후배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어.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어제'를 갖고 있는 우리인데 왜 겨울 날씨보다 더 차가운 '오늘'을 맞고 있을까? 답답했네. 기자에 대한 내부의 인식과 외부의 평가가 서로 다른데서 생긴 '사고경화'(思考硬化)의 후유증이었겠지.



며칠 전에는 <기자협회보> 편집회의에서 '2003년 올해의 언론계 10대 뉴스'를 선정했다네. 올 한해 동안 언론계 주변에서 명멸했던 크고 작은 뉴스 가운데 열 개를 압축시키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새삼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하고 고개를 주억거렸어. 그날 논의됐던 언론계 뉴스들을 기억나는 대로 늘어 놓아볼까? 기자실 폐지 브리핑룸 전환, 무료일간지 창간 붐, 신문고시 개정, 신문공동배달회사 출범, 지방언론육성지원법 제정 노력, 굿모닝게이트 오보사건, 노대통령 오보와의 전쟁 선언, 뉴스통신진흥법 시행, 언론사 사장 공모제 확산, 국정홍보처 정순균 차장 AWSJ 기고 파문, IPI의 한국 '언론탄압감시 대상국' 유지, '수신료 분리징수'를 둘러싼 한나라당과 KBS의 정면 충돌, KBS의 개혁프로그램 신설, 방송사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확산, DTV 전송방식 갈등, KBS 서동구 사장 퇴진 및 정연주 사장 취임, 정부의 가판구독 금지 조치, 대전법조비리 소송, 사상 최초의 남북방송인 토론회, 인터넷언론 지형의 다변화...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뉴스들. 정말 많지? 자네나 나나 기자생활한 지 꽤 됐지만 이처럼 많은 언론관련 뉴스가 생산됐던 해는 처음이 아닌가 싶네.



그렇지만 친구. 아무리 언론계 뉴스가 가짓수도 많고 내용도 다양했다고는 하지만 본질은 결국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어떤 뉴스이건 간에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 지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이지. 이때 평가의잣대를 내부에서 가져오지 말고 밖에서 임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 요즘 내 생각이네. 언론계 뉴스인 만큼 '기자'의 눈으로 보지말고 '세상'의 눈으로 보자는 거야. 예를 들어 '기자실 폐지'의 경우 기자의 눈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세상의 눈으로 다가가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보도 내용을 둘러싼 각종 소송 역시 언론의 비판 감시기능이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할 사안만은 아니라고 보네. '세상'의 요구가 언론의 책임을 보다 중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명확한 반증이니까.



어이 친구. 나와 자네가 이런 생각에 합의하고 실천할 때 '세상'은 기자들이 정말 변하고 있다고, 언론이 진짜 좋아지고 있다고 입을 열기 시작할걸세. 처음에는 얼음장 밑 개울물처럼 조잘대는 수준이겠지만 나중에는 큰 울림이 되지 않겠나. 그것만이 모두 함께 만들어 가는 우리의 '내일'을 보다 유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확신하네. 그러기 위해서는 굽은 허리를 다시 곧추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 좀 둘러보자구. 그리고 말을 해야 할 땐 말도 좀 하자구 이젠. 의기소침한 후배가 있으면 60촉 백열등이 켜진 주먹고기 집에서 격려도 하고, 휴일 날 골프 부킹 기다리며 목 빼는 선배가 있으면 그렇게 寄生하지 말자고 따따부따하자는 말일세.



부끄럽지만 하나 고백할게. 나 몇 페이지 안 되는 신문윤리강령의 내용을 제대로 암기하고 있는 것이 없다네. 언론사 입사 전 한 두번 읽어본 것이 전부였으니 당연하지. 내 머릿속에 있는 신문윤리강령은 물론 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의 기억은 뽀얗게 먼지가 쌓여있다네. 수습기자 시절. 넘어져 머리가 깨지면 피보다 먼저 알콜이 나올 정도로 많이 마셔댄 음주의 관행도 이젠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있네. 집사람의 귀밑머리에도 흰눈이 많이 내리고, 아들은 내년 중학교에 들어가네. 딸은 6학년 올라가고. 얼마 전 건강검진 받을 때 의사가 지방간이 더 심해졌다고 겁을 줄 때는 문득 집사람과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더군....



자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이 꽤 깊었네. 요즘은 편지쓴다는 말이 적당치 않은 것 같아. 편지를 '치다' 혹은 '두드리다'로 동사를 바꿔야 할 듯 한데 말야...^^ 이나 저나 새해 복 많이 받게. 또 치겠네.

김진수 기자 hama@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