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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대한민국 기자'를 위해

한국기자협회장 2004 신년사

이상기 한국기자협회장  2004.02.26 00: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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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기 한국기자협회장  
 
갑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예로부터 내려온 비전(秘傳)에 따르면, 갑신년이라 하면 전쟁이나 국가적 분쟁 등 나라에 큰 일이 시작되는 첫해라고 합니다. 이는 재주 많고 변덕 많은 원숭이가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신선의 열매를 따먹어 하늘이 형벌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노력 없이 무위도식한 사람과 건성으로 인생을 허비한 사람들에겐 경각심을,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예지력, 준비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인생역전의 기회를 주는 해라고 합니다.
혹여 나라에 큰 일이 날까 걱정도 되지만, 인생역전의 기회라고 하니 한편으로 기대도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기대입니까 혹은 걱정입니까?
청년실업이 1백만명에 이르고 제2의 IMF가 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 이라크전과 북핵을 둘러싼 아슬아슬한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4월 치러지는 총선도 문제입니다. 민생현안은 제쳐두고 정쟁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을 언제까지 안타깝게 바라만 보아야 하는지 걱정도 듭니다.

그 가운데 우리 언론에 대한 시선 역시 날이 갈수록 매섭고 따가와지는 것을 느낍니다.
전에는 '신문에서 봤다'거나 '방송에서 봤다'고 하면 진실로 통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동화 속 '양치기 소년'이, 국민들에게 비춰진 우리 언론 모습이 아닌가 두렵기만 합니다.

지금 우리 기자사회는 불확실성 속에서 좌표를 잃고 있습니다.
진실과 공정보도라는 역사적 과업은 젖혀둔 채 자사이기주의에 빠져 사사로운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으로 지탄받는 일까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개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언론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개혁의 대상이 아닌 개혁의 주체로 당당히 나서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기자들의 자부심부터 회복해야합니다.

먼저, 더 이상 고용불안에 떨면서, 쓰고 싶은 기사 못써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에 기자협회는 우리 기자들이 맘놓고 기사 쓸 수 있도록 전문가들로 구성된 소송대책팀을 상설해 뒷받침하겠습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 기자들에 대한 신뢰를 좀먹는 주범인 '아님 말고식' 편파·왜곡 보도도 막아야 합니다. 협회 내에 보도 심의기구를 새로 만들어 이런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겠습니다.

둘째,스스로 언론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더 이상 발전도 희망도 없습니다. 곧 총선이 닥칩니다. 단순히 감시와 비판에 그치지 않고, 진실과 공정보도의 대원칙을 지켜나가는 선진언론 선거보도의 새로운 기틀을 확립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기자사회의 전문성을 높이는 일이 무척 중요합니다. 질 높은 기사 아니면 국민들한테 더 이상 어필하지 못합니다.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연구해서 대안을 제시하고 국가와 민족의 앞날에 밝은 빛을 던져줄 수 있는 언론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 우리의 뜻과 지혜를 모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이제는 세계 유수 언론사하고, 내노라하는 기자들하고 어깨를 당당히 겨뤄야 합니다.
'邪不犯正'. 사도는 정도를 범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는 백범 김구 선생이 즐겨 썼던 서산대사의 시를 기억합시다!

'눈 내린 들판 걸을 때
함부로 발걸음 내딛지 마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이 훗날 오는 사람의 길이 되느니...'

당당한 어깨, 환한 얼굴, 대한민국 기자를 위해, 올 한해 우리 모두 두손 꼭 잡고 힘차게 전진합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04. 1. 1. 한국기자협회장 이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