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조선일보 박세용 기자가 유명을 달리했다. 지인들은 갑작스런 박 기자의 죽음에 눈물을 머금고 빈소를 찾았지만, 영정 속의 그는 오히려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동료들을 맞았다. 남다른 성실함으로 수많은 특종을 발굴한 뛰어난 기자였고, 따스한 가슴으로 주위 사람을 대했던 진실한 동료였기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술잔은 너무 쉽게 비워져 나갔다.
우리는 안타까운 그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무엇이 소중한 동료를 앗아갔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박 기자는 특종 기사를 작성하고 회사에서 서초동 검찰청사로 다시 돌아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미 새벽 1시 반이 넘었는데도 그는 집이 아니라 다시 검찰 청사로 향했다. 추가 취재를 하려고 했거나 청사 기자실에서 새우잠을 자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박 기자가 졸음을 이기지 못한 잠깐 사이 이미 승용차는 중앙선을 넘어 버렸다. 연일 숨가쁘게 진행되는 검찰 수사를 쫓아가고, 그 틈바구니에서도 특종을 건져내야 하는 고달픈 법조 기자의 생활이 결국 사고를 부른 것이다. 법조 기자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서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도의 차이야 조금씩 있겠지만 기자들의 노동강도가 살인적이라는 점은 다른 출입처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뇌출혈과 암 등으로 잇따라 세상을 등진 또 다른 기자들이 그 사실을 반증해 준다. 별을 보고 출근해 별을 보고 퇴근하는 것은 기본이고, 잦은 취재원과의 술자리도 유능한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다. 집에서 쉬고 있어도 항상 머리 한 구석에는 출입처에 대한 생각이 남아있고, 낙종에 대한 불안감도 좀처럼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느새 세상의 시각도 많이 바뀌어 기자직에 대한 비난도 높다.
사명감 하나로 겨우 버티고 있는 우리 기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도록 이제는 회사가 나서야 한다. 언론사의 가장 큰 자원은 고가의 윤전기도, 휘황찬란한 뉴스 스튜디오도 아니다. 현장에서 뉴스를 발굴해 이를 지면에 옮기고 전파를 타게 하는 사람, 바로 기자들이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 언론사들은 증면과 경품 경쟁, 시청률 경쟁 등 외형적인 싸움에만 몰두해 왔다. 그러는 사이 더욱 강도 높은 노동에 내몰린 기자들의 에너지는 고갈되고, 자신의 몸조차 추스르지 못하는 동료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이제 언론사는 외형 키우기에만 집착하지말고, 언론사 최고의 자산인 기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기자협회보의 보도에 따르면 언론계의 직무에 관한 보상 규정이 매우 허술하다고 한다. 직무와 관련해 기자가 사망했을 경우에 대한 대책이 사규에 명문화되지 않은 회사가 있을 정도다. 각 언론사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사원들이 업무중 사망하거나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 대비한 보상규정을 명확히 확립해야 할 것이다. 또 기자들도 주5일 근무제의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회사가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자들이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걱정하지 않는 근무 여건이 마련돼야 최고의 뉴스가 생산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