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권위주의 시대의 기자들이 취재하기를 꺼려하거나 보도하기를 금기시해 온 주요 부분은 청와대와 대통령, 재벌 그리고 언론사 비판 관련 기사가 아니었나 싶다. 이러한 저널리즘의 터부는 경직된 정치체제와 언론체제가 민주화되면서 점진적으로 무너져 왔다. 30여년간의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숨죽여 온 한국언론은 역설적이지만 이제는 오히려 터부의 혁파를 즐기고 있을 정도다.
청와대는 일부 신문의 ‘악의적 보도’에 대해 잇달아 손배소 등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고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6일 조선일보 지난 1월 12일자 4면 ‘검찰 두번은 갈아 마셨겠지만…’ 제하 기사에 대해 명예훼손에 따른 10억원의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제기한 것은 이러한 구체적 사례의 하나로 이는 盧대통령이 공인 자격으로 언론사를 상대로 한 첫 손배소 청구이기도 하다. 청와대 대변인실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조선일보의 상기 기사가 명백한 오보임에도 불구하고, 사후 어떤 사과나 반성의 조치가 없어 언론사로서 기본적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청와대가 짧은 집권기간 동안 이처럼 ‘잘못된 보도’와 관련하여 법적 대응을 한 사례는 총 49건으로 △언론중재위 중재신청 25건 △정정요청 17건 △반론요청 8건 △법원소송청구 7건 △검찰고소 2건 △언론사 정정·반론요청 15건 등이다.
신문의 재벌에 대한 터부도 많이 깨지고 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하여 엄청난 액수의 검은 돈이 재벌에 의해 참으로 희귀한 수법으로 정치권에 흘러간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는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시민단체와 온라인신문의 연대적 감시와 비판적 보도도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벌에 대한 탈터부화는 메이저 신문과 마이너신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우는 실제로 지난 12일 검찰이 “한나라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받은 불법대선자금이 이미 드러난 112억원 이외에 170억원이 더 있다”고 발표한 내용을 보도한 경우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마이너신문들은 한결같이 「삼성, 한나라에 170억 더 제공」 등으로 제목을 달았으나 조중동은 엉뚱하게도 검찰의 편파수사를 부각시킴으로써 저널리즘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난 보도를 했다.
동업언론사 감싸주기도 옛날 얘기가 된지 오래다. 신문사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신문사간의 상호비판도 이미 전쟁 수준에 다다랐다. 이른바 조중동 삼각구도에서 벗어나 일등신문의 고지를 차지하려는 중앙일보의 시도에 대해 조선일보가 지난 가을 비판에 나서기 시작한데 이어 지난 설날부터 시작된 구독료인하전쟁으로 두 신문사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기사제목에서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던 삼성그룹의 불법대선자금 추가제공 사실을 조선일보가 사설을 통해 신랄하게 추궁한 것은 두 언론사간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 아닌가 보여진다.
하지만 최근의 신문보도를 보면 우리가 소중하게 가꾸고 신성시하고 외경스럽게 지켜가야 할 권위와 가치마저 휩쓸려 붕괴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권위화는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겠지만 언론이 앞장서서 청와대의 표현대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혐오스런 표현’으로 대통령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폄하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나 언론의 품위를 위해서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되새겨 보았으면 싶다. 언론의 오도된 탈터부화 과정 속에서 뉴스의 품질이 상대적으로 저하되고 그로 인해 신문에 대한 신뢰마저 크게 추락하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