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기자사회는 크게 2가지 딜레마에 빠져 그 위상이 날로 추락하고 있다. 방송과 신문, 대형신문과 중소신문의 수익 양극화가 그 한 가지요, 족벌·재벌 언론과 나머지 언론과의 극한 대립이 나머지 한 가지다. 이 같은 문제의 중심에 기자들이 있으며 진실보도, 감시·비판으로 상징되는 기자정신의 퇴색과 사익에 충실한 보도의 난립으로 기자사회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그나마 언론 본연의 소임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상당수 기자들조차 이 같은 두터운 벽에 부딪쳐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기자들이 시장논리나 자사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단합을 한다면 기자사회를 더욱 명예롭게 할 수 있는 데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시장에서 우월적 위치에 있는 언론사 기자들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급여와 복지, 그리고 회사의 생산성 향상 독려에 몰입돼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애써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시대 기자는 급여에 자족하는 회사원으로 머물러야 하는가. 그러기에는 한국언론과 기자사회가 처한 현실이 너무 부끄럽고 처참하다. 마침 며칠 전 SBS 노조와 언론노조 등의 투쟁으로 SBS 윤세영 회장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 선언을 했다. 우리는 그것이 반드시 실행되고 이 같은 조치가 다른 족벌·재벌언론 등으로도 옮아붙어 나아가 한국의 전체 기자들을 진정 기자답게 하는 희망의 싹으로 승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모두 각성해야할 때가 됐다. 기자가 사익(社益)에 동원되거나 소유주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는 정보 수집원으로 변질된다면 머지않아 불명예스런 묘비만 세상에 남는다. 잃어버린 기자의 자존심과 언론인으로서의 권익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편집권이 독립되고 소유자나 경영자에 대해 일방적 복무를 강요하는 이른바 `마름기자’ 양성 시스템을 철폐해야 한다. 마름기자는 고위간부가 될수록 후배들에게 암묵적으로 생존 원리를 터득케 하여 침묵하며 일만 잘하는 `회사원’으로 길들여지게 만든다. 사실 소유주나 경영자가 올바른 언론관을 갖고 있다면 이런 비판이 무용하다. 그러나 그러한 바람은 현재로선 이상(理想)에 가깝다. 따라서 각 사 기자들이 기자협회, 언론노조, 평기자회를 활성화시켜 이 문제에 대해 공동대응하며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매체 영향력이 커진 방송 기자들도 어느 방송사의 평균 연봉이국내에서 최고 수익을 내는 대기업의 평균연봉보다 훨씬 높다는 지적을 인식, 기자정신의 퇴색과 현실에 안주해 기득권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유럽사회가 일찌감치 인정했듯이 언론은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는 민주주의의 필수 요체이기 때문에 시장논리로만 재단할 수 없다. 우리 회사만 1등이면 된다는 이기심을 버리고 이제라도 깨어나 참다운 언론환경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것은 특히 현실적으로 조중동과 방송사 기자들이 동참하고 앞장서야 가능하다. 내가 나서지 않고, 나에겐 당장 절박하지 않다하여 끝까지 이를 외면한다면 기자사회는 끝없는 추락과 불명예를 떠 안을 수밖에 없다. 기자로 남을 것인가, 회사원으로 만족할 것인가, 고민스럽겠지만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