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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국민단합'에 언론 앞장서야

언론다시보기  2004.03.03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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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살아온 세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자축해야 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반세기전 이 나라는 36년간에 걸친 일제의 식민지 수탈정책과 5년후 뒤이은 동족 상잔의 전쟁으로 초토화된 상태였다. 천연자원도 별로 없는 빈국 중 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미국과 유엔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경제재건은 물론 주권국가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비록 민족과 국토의 분단을 극복하는 일에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을 망정 우리는 이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존재가 되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대만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역사 어느 시대에 우리가 특권층만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까지도 자비로 외국관광을 다니며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맡기는 오만까지 부릴 수 있는 여유를 가졌던가.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 발전으로 보아도 우리의 성공은 세계를 놀라게 할만하다. 우리 손으로 각급의 지도자들을 직선하는 민주국가가 되었을 뿐 더러 지금 우리나라처럼 언론과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거의 무한대로 허용되는 나라는 세계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결코 편치 않다. 편하지 않을 뿐더러 지금 우리 국민은 유례가 없었을 정도의 심한 갈등과 자괴감에 젖어들고 있다. 신문을 보나 텔레비전을 보나 정계나 재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불법행위로 연행 또는 구속되었다는 소식이 지면이나 화면을 온통 도배질 하기 시작한지가 벌써 반년도 훨씬 넘은 속에서 경제는 아래로 곤두박질을 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위험수위에 육박하는 가운데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의 엽기적인 범죄나 자살에 관한 소식이 마치 정치 스캔들에 대응이라도 하려는 듯 연일 우리의 뇌관을 강타한다. 이러고도 사회공동체가 유지 될 수 있는 것인가 걱정이 될 지경이다.

우리 사회는 정말 구제불능 정도로 썩고 병들어 있고 그 때문에 병보다 더 치명적일 수도 있을 정도의 처방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현상이 상당 부분 집권, 또는 새로운 집권희망 세력의 얄팍한 정략이나 언론의 선정적 보도 자세, 그리고 국민의 성급한 도덕주의적 기대 때문에 크게 부풀려져 우리의 자화상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것인가.

불법정치자금이나 비자금 조성과 사용의 관행을 근절시켜야 한다는데 이의를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폭로성 보도가 많은데 비해 구조적 원인분석과 그에 기초한 처방과 대안 마련에 관한 정보는 너무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금 연루되어있는 사람들만이 특히 도덕적으로 결함이 큰 사람들이고 그들을 새 사람들로 대치하기만 하면 문제가 사라질 것인가.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개개인의 인격과 관계되기보다도 정치구조나 유권자들의 정치의식 수준과 관계된 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치 부패와 사회갈등의 문제를 하나의 큰 구조적 문제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도 개개인의 스캔들 차원으로 다루어 버린다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단죄하고도 부패정치의 근절에는 실패했던 전철을 다시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거두어온 성공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되고 우리의 앞날에 대해 비관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은 많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까지 한번도 국민으로서 진정한 내면적 긍지를 느끼며 불안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본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이제야 말로 바로 그러한 내면적 긍지와 그에 기초한 국민적 단합을 이룩하는데 언론이 앞장서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