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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장] 미국을 주시한다

우리의 주장  2004.03.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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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참담했다. 이윽고 분노가 들끓었다. 분노의 해일이 지나간 다음에 우리가 저들에게 무엇을 얕보였을까 반성을 하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저들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이라크 주재 미군이 KBS취재진을 강제 억류한 소식은 한국 기자사회에 엄청난 치욕을 안겼다. 정당한 취재활동을 마치고 바그다드의 팔레스타인 호텔로 돌아가는 KBS 취재진을 미군이 포승줄로 묶은 채 이송하는 장면을 찍은 AP통신발의 사진을 보며, 한국 기자들은 야만스런 미군의 군화발이 가슴을 짓이기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분명히 우리 취재진은 미군들에게 저널리스트라고, 그것도 저들의 요구에 의해 군대를 파병하는 코리아의 저널리스트라고 밝혔다고 했다. 저들의 장교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저들이 폭발물을 찾는답시고 우리 취재진을 포로처럼 압송해 여러 시간 압류한 까닭은 무엇인가. 저들에게 한국기자들은 저들의 우두머리들이 파병을 요구하며 내민 혓바닥의 수사처럼 우방이 아니라 그저 약소국의 저널리스트에 불과했던 것인가. 저들의 야만적인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언제라도 입에 재갈을 물릴 수 있는 하찮은 대상이었던 것인가. 미국과 미군의 만행이 언론사의 기자에게 이러할진대 우리의 일반국민에겐 어떨 것인가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한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는 참담함과 분노의 넌출을 걷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미군의 장갑차가 어린 여중생 효순이와 미선이를 밟고 지나갔을 때, 우리 언론은 침묵했다. 민초들의 분노가 촛불시위로 번졌을 때에야 관심을 보이는 척하다가 국익론을 들먹이며 그 불을 끄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가 오늘 이렇게 나타났다.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이성을 찾자면, 이번 일은 이라크 내에서의 연쇄 폭발 사고로 미군의 경계심이 극도에 달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정말이지 그렇게 우발적인 일로 믿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이라크 지역을 취재할 기자들에게 배전의 신중함을 기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각 신문·방송사에게도 취재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과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우리 모습을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한편 이라크 주재 미군 당국과 미국 정부에 엄중히 요구한다. 이번 사건에 대해 즉각 공개사과하라. 그리고 조속한 시일 내에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대책을 내놓아라.

우리는 기억한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대니얼 펄 기자가 파키스탄 과격단체에 의해 납치 억류돼 처형됐을 때 전미국민이 슬퍼했던 것을. 우리 한국민과 한국 기자들도 더불어 안타까워했다. 9·11테러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국민들과 기자들 중 많은 이들이 눈물을 함께 흘렸다.

한국 기자사회 뿐 만 아니라 한국민 전체가 이번 사건의 처리과정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은 명심하라.

우리 정부는 이번 사태의 이면에 우리 외교통상부의 무능함과 주권 국가로서의 체면을 살리지 못한 안일함이 숨어 있다는,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의 성명에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기 바란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여며 이번 사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