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자 500명 대상의 한국언론재단 조사에서(2003), 신문을 읽는 시간이 하루 평균 44분으로 집계되었다. 수백명의 ‘엘리트’들이 만든 신문을 독자들이 40분만에 읽어치운다고 기자들이 섭섭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의 주목(注目)을 산술적으로 합치면 엄청난 양이 된다. 하루 평균 1천만이 신문을 읽는다고 잡아도, 4억분 혹은 6백70만 시간이다.
그래서 최종판을 검토한 편집국장의 ‘오케이’ 목소리가 떨리지 않는다면, 그 편집국장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 일어난 수많은 사건 중에서 이 기사들이 독자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판단력을 최대한 동원하고, 몇 차례의 회의를 거쳐 결정했습니다. 내용도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편집국장의 ‘오케이’에는 이 주장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대통령 사돈 민경찬씨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투자회사를 설립해서 6백50억을 모았다고 주장했다는 기사가 1월 29일자 대부분의 중앙일간지에 실렸다. 경향, 동아, 조선, 중앙이 사진과 함께 제법 크게, 세계와 서울은 상대적으로 작게 다루었다. 이 기사를 읽고 ‘그래도 우리 사회가 조금씩 깨끗해지고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많은 독자들이 다시 한번 절망했을 것이다. 아! 아직까지도….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기사는 없다. 펀드의 실체가 없다는 검찰의 잠정 결론을 중계하는 보도가 고작이다. 사과도 없다.
인터뷰 내용이 나중에라도 사실로 밝혀질 수 있다. 문제는 보도 당시의 상황이다. 신문들이 아무런 추가 확인 없이, 유일하게 시사저널을 인용해서 보도한 것 같다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다. 시사저널도 아무런 사실 확인 없이 인터뷰를 단순 보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잡지는 첫 보도 후 몇 주나 지난 2월 26일자 ‘편집장의 편지’에서 “그가 단순 사기범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민경찬 펀드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투자한 이들의 면면이나 돈의 성격이 매우 흥미로울 수 있다”고 쓰고 있다. 그래서 “이만하면 ‘충분히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는 것’ 아닌가”라고 자문한다. 저널리즘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 혼란스러운 대목이다.
인용했다고 해서 면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강조할필요는 없을 것이다. 논설위원들까지 인터뷰 내용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였다. ‘대통령 사돈에게 돈 몰리는 나라’(동아 1.30)를 비롯한 개탄의 사설들이 이를 말해 준다. 안타깝지만, 민병찬 사건은 예외가 아니다. 한국 저널리즘은 취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단서를 바로 보도하는 고약한 병증을 갖고 있다. ‘차떼기’에 언론이 흥분했지만, 정작 선거불법자금을 밝혀낸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수사 결과를 먼저 보도하기 위한 경쟁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검찰 수사기록을 입수해서 피의자(!) 진술 내용을 사실 확인도 없이 특종이라고 보도하는 것이 한국 저널리즘의 현실이다(“본보, 검찰 수사기록 입수/썬앤문 회장, 대선후보 경선때 盧 직접요구로 “盧측에 5,000만원 줬다”-한국 1.8).
확인되고 또 확인된 사실만을 주목하기에도 독자는 버거울 정도다. 수십만명 혹은 수백만명이 매일 40분 동안 한 신문을 주목한다. 그 주목에 걸 맞는 편집국장의 두려움을 확인하지 못하면 주목은 외면으로 바뀔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