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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 의회권력의 '폭거'와 언론의 암묵적 지원

언론다시보기  2004.03.17 1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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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그것은 하나의 총칼 없는 쿠데타였고, 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적 정변이었다. 진보성향의 한 마이너신문은 이를 두고 수구세력의 ‘탄핵쿠데타’로 규정하면서 “두 보수정당이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 것은 낡은 정치세력의 합법을 가장한 폭거”라고 비판했다.

쿠데타와 정변의 성공 뒤에는 드러난 주역과 드러나지 않은 주역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 쿠데타의 드러난 주역들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온 ‘야만의 정치인’ 군상들이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은 이제 이들 드러난 주역의 얼굴에 있기보다는 드러나지 않은 주역들에 대해 모아지고 있다. 이들 드러나지 않은 주역들은 보수적 학자들과 수구적 논객들일 수도 있다. 최근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기득권 세력을 의회 쿠데타의 드러나지 않은 주역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거대야당의 의회폭거를 보면서 이번 의회쿠데타의 성공 뒤에는 보수언론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으리라는 점이다.

이들 보수신문들은 지난 9일 끝내 탄핵안이 두 야당에 의해 전격적으로 발의되는 날까지도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론을 부각시켜 국민의 반탄핵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시키는 데 암묵적으로 기여했다. 대통령을 비판해온 이들 신문들은 50%가 넘는 국민들이 반대(탄핵안이 통과된 후에는 70%까지 상승)한 야당의 대통령 탄핵안 발의의 부당성을 비판하지 않고 애써 눈을 감아버렸다.

한 여론조사 결과 우리나라 공법(헌법)학자의 70%가 탄핵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실이 말해주듯 이 탄핵발의가 잘못된 것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이들 신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불을 보듯 뻔한 국정혼란과 국민적 불안 및 대외신인도의 하락 등 탄핵안이 가져올 부정적 측면에 대해 이들 신문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지난 10일자 한 보수신문을 보자. 이 신문은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안이 발의된 날 한가하게 1면에 ‘지금 경제는…’ 제하의 특집기사를 박스로 처리했다. 이는 이날 H신문의 지면 구성과 대조적이었다. 이 신문은 탄핵안 발의 관련 스트레이트기사와 함께 시민단체들의 반응 기사와 헌법학자의 기고문 등을 실어 야당의 탄핵안 발의를 비판했다. 이 신문은 이날 사설로도 이날의 의회폭거를 비판했다. 하지만 보수언론들은 비판과 타협을 위한 공개토론과대화의 장을 제공해야 하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보수신문들은 이번 의회쿠데타에 대한 국민적 반감과 저항의 칼끝이 차츰 자신들에게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회쿠데타 세력의 ‘의도된 거짓말’을 전파하는 나팔수로 전락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체제가 탄핵안 발의로 흔들리지 않을 만큼 건강하다는 ‘체제건강론’을 펴면서 탄핵발의로 인한 국정혼란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잠재우는 데 기여해온 이들 보수신문들은 이번엔 같은 입으로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면서 이의 최소화를 위한 ‘국정안정론’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언론현실을 보면서 코바치와 로젠스틸이 지적한 바대로 진실만을 추구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시민에게만 충성해야 할 언론이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 ‘편향된 권력의 감시자’로 추락하고 있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한국 저널리즘의 위기를 느낀다. 우리의 저널리즘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편향보도로 신뢰를 잃고 있는 신문이 의회쿠데타의 드러난 주역들과 함께 방송의 편향성을 말하고 있다.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