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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 국회의 기능, 국민의 책임

언론다시보기  2004.03.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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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총선이 드디어 코앞으로 다가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래 지난 일년 남짓한 기간 동안 대한민국의 정치는 거의 전부가 다 이 총선을 겨냥한 작전의 연속이고 탄핵정국도 결국은 부패척결 문제로 달아올랐던 정치투쟁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른 것에 불과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총선은 왜 그처럼 중요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었나. 국회의 역할이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가. 생각해 보면 국회의원 선거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적은, 적어도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는,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매우 역설적인 것은 출마자들 사이에서 선거 분위기가 과열되고 금권정치가 판을 치면 칠수록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떨어졌지 올라가지가 않았다는 점이다. 자유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 결정을 거부하고 수만의 군중이 연일 시위를 벌이는 현상은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 그리고 다가온 총선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국회의원들의 행태가 그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들을 뽑아준 유권자로서의 국민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 많은 선거자금은 모두 유권자들하고는 관계없는데 만 쓰인 것인가.

어느 정당 어떤 후보에게 표를 던질가를 결정하기 전에 유권자들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이번에 자기가 뽑는 국회의원의 행적에 대해서 적어도 앞으로 4년 동안은 자기가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두 말할 것도 없이 국민의사를 충실히 대변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면서, 이 나라의 헌정 질서를 수호하고 민족의 안정과 번영을 주도해 나가는 일이다. 부패하지 않아도 무능한 사람은 국민을 대표할 자격을 갖지 못한다. 자기보다도 못한 사람이 국민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출마했다면 단호하게 거부하는 책임있는 행동을 유권자들은 보여줘야 한다. 자기보다도 못한 정치인을 자기의 대변자로 뽑는다면 결국 국민 스스로가 다시 거리로 나서야하는 지극히 낭비적이고 때로는 파괴적인 정치행태를 극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우리 정계는 오랫동안 정당들이 뚜렷한 정강을 내세우는 공당의 성격을 갖고 있기 보다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이합 집산하는 붕당정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부터는 정당들이 정강에서 차이를 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가 한발자국 진보했다는 환영할 만한 조짐을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내세우는 정강이 자기의 정치적 신념과 맞는다고 해도 출마자의 검증된 인품이나 능력이 부족하다면 내세우는 이상을 실천에 옮기는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임을 경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민주국가에서 야당과 여당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 다른 길로 달리는 맞수들이지 죽도록 서로 싸우는 폭력집단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역을 도모하지 않는 한 생각에 차이가 있더라도 인격과 능력으로 보아 훌륭한 맞수를 만나는 것이 이념은 같아도 인간적으로 신뢰가 가지 않는 동지를 한 사람 더 갖는 것 보다 낫다는 것을 양심적인 정치인들은 인정할 것이다.

투표에 앞서 유권자들이 취해야 할 태도는 자기는 과연 부화뇌동함이 없이 양심과 양식에 따라 국민으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를 기도하는 자세로 반성해보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차분한 선거분위기 조성에 앞장서야 할 것이 언론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