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협회 차원 NIE 추진“정부도 지원을”
미래신문 독자서비스·모바일‘필수’
지방지, 중앙지 답습 탈피 특색 살려야
천장이 로코코 문양으로 장식된 중앙일보 21층 접견실. 본보는 제48회 신문의 날을 맞아 1일 오후 홍석현 세계신문협회 회장(중앙일보 회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날 인터뷰에는 중앙일보 한천수 회장실장(전략기획담당)과 박종권 기획팀장이 배석한 가운데 1시간20여분동안 진행됐다.
홍 회장은 인터뷰 전날 저녁 터키에서 귀국해 시차적응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홍 회장은 한 마디로 ‘솔직한 리더’였다. 그는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속내를 밝히고 지적할 것은 분명히 지적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한겨레를 10여 차례 언급했다. 그는 “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려면 진보신문과 보수신문의 건강한 보완관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회장은 특히 “신문이 잘돼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며 “어렸을 때부터 신문을 읽고, 책을 읽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며 신문활용교육(NIE)을 역설하기도 했다.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다.
아시아 지역 출신으로서 첫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으로 선출됐고, 지난해 12월 연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새로운 일인데 그 의미는 무엇이고, 또 WAN에서 보는 아시아지역 및 언론의 위상은 어떻습니까?
WAN은 세계신문업계의 UN과 같은 기관입니다. 마침 UN과 같은 해에 출범했어요. 현재 1백여개국의 1만8천여개 신문사와 통신사 및 유관단체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습니다. 50여년이 넘는 역사 속에 아시아지역 출신 회장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함께 아시아 신문시장의 급격한 팽창이 WAN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고 봅니다. 다만 중국은 언론의 자유측면에서 아직 WAN의 회원국으로 가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일본이 WAN 안에서 아시아 지역을 대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사 발행인으로서 오랫동안 WAN 회원사 및 대표들과 교류했던 경험이 회장 선출과 연임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아시아 지역 언론들과의 접촉 확대 및 교류, 협력에 있어서도 저의 기여를 기대고 있는 것 같습니다.
WAN은 내년도 연차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이며, 행사는 어떤 규모로 어떻게치를계획입니까?
WAN의 57년 역사에서 연차 총회를 아시아지역에서 개최했던 것은 총 여섯 번째입니다. 그 가운데 일본에서 다섯 번, 그리고 홍콩에서 한 번 치러졌습니다. 전 세계 주요 신문사의 발행인과 편집인 및 중진언론인들 약 1만2천여명이 참석하게 될 서울총회는 한국과 한국의 언론 상황을 바깥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아울러 내년 총회에선 IT산업의 획기적 발전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한국 언론계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디지털 방송도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신문의 여론 주도 기능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전 세계적으로 신문이 과거에 비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문산업의 위축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문, TV, 라디오, 잡지, 인터넷 등 각각의 미디어는 고유의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 매체가 신문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간 우리 신문업계가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거나 대응이 늦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의 몇 나라들은 신문산업의 전 세계적인 위축 추세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성공적으로 넓혀가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구 대비 신문사 숫자가 많습니다. GDP대비 신문 구독자수도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는 아직 성장의 여지가 충분합니다.
외국에는 1만부에도 미치지 못하는 발행 부수로도 안정적인 경영을 해 가고 있는 신문사들이 많습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아사히신문이 모바일과 결합을 통해 시장 규모를 키워가고 있어요. 핀란드는 컴퓨터 보급률이 세계 최고이면서도 청소년 독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진국의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우리 신문업계가 힘을 하나로 모은다면 얼마든지 활로를 열어 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위기에 처한 신문산업의 현실에서 국내 신문의 대응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해 11월 WAN이 서울에서 개최한 ‘아시아 신문업계 대표자 회의’(Asian Newspaper Leaders Summit)에서 신문산업의 미래와 대응방안에 대한 단서가 나왔습니다. WAN은 독자의 요구사항 파악, 젊은 독자층 유치, 모바일 전략, 창조적인 지면제작 등을 앞으로 신문업계가 전략으로 삼아야할핵심과제라고 강조했어요. 독자를 늘리는 것은 힘든 작업임은 틀림없습니다. 왕도가 따로 없고 끝 또한 없습니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제 신문업계가 수용자 중심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독자요구사항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마케팅과 콘텐츠를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미래 독자를 유치하는 데는 신문활용교육(NIE)이 가장 유효한 수단입니다. NIE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스페인의 경우 구독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도 굉장합니다. 흔히 젊은이들이 지금은 안 읽지만 나이가 들면 읽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렸을 때 읽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서도 읽지 않습니다. 때문에 신문협회 차원에서 NIE를 추진하려고 합니다. 정부도 신문발전과 교육적 차원에서 적극 협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무료신문이 속속 등장하면서 신문시장도 다매체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반면 기존 신문사들은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신문산업이 생존의 기로에 처한 느낌입니다. 보수와 진보신문의 갈등도 큽니다.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무료신문이 짧은 시간에 많이 생겨나 기존 신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원래 타블로이드 판형의 무료신문은 신문을 잘 접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한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무료신문을 통해 활자매체를 자주 접하다 보면 기존 신문에도 관심을 돌릴 것이라는 것이 유럽이나 미국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연결고리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어 걱정입니다. 신문협회 차원에서 멀지 않아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 볼 생각입니다. 현 시점에서 신문간 구조조정과 통폐합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사회가 분화되고 복합화됨에 따라 관점, 정보, 지식, 서비스 등 특정 분야별로 타 매체와의 전략적 제휴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보수와 진보지(紙)와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 한겨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진보신문과 보수신문은 건강한 관계로 가야합니다. 한겨레가 경영혁신을 통해 마켓을 늘려나가야 합니다. 또한 스페인 진보적인 일간지인 ‘엘빠이스’(EL PAIS)처럼 편집인을 10년 정도 맡겨야 합니다. 적어도 한겨레가 재정적으로 안정적일 때까지 말입니다. 이제 보수가 진보를 옥죄고, 진보가 보수를 옥죄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상생의 길로 가야합니다.
정보화로인해 전 지구촌이 개방화 추세로 나아가면서 신문, 방송 등 미디어산업도 큰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이는데요.
우리는 지금 통합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즉 국경을 넘나드는 정보 홍수와 다매체, 다채널을 특징으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조만간 미디어 산업에도 시장개방이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선진국은 통합미디어 시대를 맞아 미디어 산업에 대한 규제조항을 완화해 가거나 폐지해 가고 있어요.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제도와 규범은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외국자본과의 경쟁이 가능하도록 미디어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키워 가는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문 판매시장의 혼탁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신문협회 차원의 대안은 있는지요.
그동안 신문협회 차원에서 수차례에 걸쳐 과당경쟁을 자제하겠다는 공동 결의문을 발표했습니다. 또 신문공정경쟁위원회를 발족해 자정활동을 펼쳤으나 시장질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문업계 과당경쟁의 근본원인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어요.
우선 신문기업 수입구조입니다. 신문판매보다 광고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판매비용이 얼마가 들든 신문부수를 늘려 광고수입을 더 많이 올려야 된다는 생각이 강박감으로 작용해 과당경쟁을 촉발시켰다고 봅니다. 무가지와 경품을 제외한 다른 마케팅 수단은 등장할 수가 없었어요.
또한 신문유통구조가 경직돼 있습니다. 우리는 지국을 통한 가정배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지국 의존도가 높습니다. 게다가 지국의 경영자립도도 미약해 일선 현장의 경쟁은 말 그대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입니다. 본사 중심의 독자 서비스 시스템이 작용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나아가 신문업계는 그간 신문시장에 대해 중장기적인 대책보다 단기적인 대책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신문시장의 규모를 함께 키워가는 노력보다 다른 신문 독자들을 유치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습니다. 갈수록 판매비용은 높아지고, 똑같은 독자를 놓고 경쟁하다보니 이 신문 저 신문으로 옮겨 다니는 유동 독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돼 왔습니다.
신문협회는 이 같은 문제점에 착안해 이달 중으로 ‘신문시장과학화와 건전경쟁을 위한가격정책’ 조사연구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이 조사연구의 결과가 곧바로 시장질서의 회복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유통구조 개선 등 후속 조사연구가 정밀하게 이어진다면 현실적인 대안 모색이 가능할 것입니다.
왜곡된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해서는 신문시장의 70∼80%를 점하고 있는 메이저 3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조선, 동아일보와 함께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해 공동보조를 취할 생각은 없는지요.
선언적인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속이 중요합니다. 판매시장의 합리화가 확보되지 않는 한 힘들어요. 신문 판매시장의 문제는 말씀드렸듯이 구조적입니다. 따라서 그 해법도 판매시장의 합리화 및 과학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봐요. 중앙일보가 시도하고 있는 구독료 자동납부 캠페인도 바로 혼탁한 신문판매 시장을 바로 잡고 독자 친화적인 신문을 만들자는 것이 그 배경입니다. 신문사도, 지국도 함께 살자는 공존공영을 위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런 인식 아래 신문사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신문업계의 활로를 찾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신문협회가 설립된 1962년 이후 42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국내 신문은 질적 양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했는데요, 최근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한국신문협회의 위상과 역할은 무엇입니까?
사회 변화에 따라 신문의 위상과 역할도 달라져야 합니다. 한국신문업계는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다양한 계층간의 갈등을 치유하는데도 노력해야 돼요. 신문협회는 최근 이사회에서 5개 상임위원회를 구성하고 신문산업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체계적으로 전개해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이들 상임위원회 활동을 통해 먼저 신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며 언론자유의 신장에 앞장 설 것입니다. 신문의 신뢰도를 증진하고 독자들의 요구사항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지면과 서비스, 마케팅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대안 연구에도 노력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신문연구소를 설립하는 문제도 심도 있게 검토해 갈 것입니다. 유통구조 등 경영혁신 전략도 강구해야할 부문입니다.
지난 2월말 국회에서 ‘지역신문발전 지원특별법’이 통과됨에 따라 지방신문의 지형도 변화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행령 마련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요. 신문협회 차원의 지방신문의발전방안이 있다면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회장이 되면서 몇 가지 프로젝트를 한 것이 있어요. 그것은 지방신문 활성화와 NIE입니다. 지방신문 발전을 위해 지금 특별법으로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것부터 변해야 됩니다. 지방신문은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신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중앙신문을 답습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방지가 큰 것을 하려고 하니까 자기 독자들을 잃고 있어요. 신문협회에서는 지방신문 활성화와 관련, 4월에는 또 다른 연구팀이 스칸디나비아 3개국과 덴마크 등 북유럽의 신문시장을 둘러볼 계획입니다. 이 연구팀을 통해서도 유통질서를 바로 세우는 좋은 아이디어가 제공되리라고 기대해 봅니다.
신문인으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신문을 만드는 것은 경영마인드와 도전정신을 요구합니다. 신문제작은 고충도 있지만 성숙한 산업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을 우리사회와 함께 호흡하면서 가잖아요. 요새 중앙일보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변화와 도전 그것이 성취될 때 아주 기분이 좋아요.
끝으로 학창시절 별명이 있었다면 소개해 주시죠.
지금 나를 보면 친구들이 못 알아 볼 것입니다. 두 가지 별명이 있었는데 ‘갈비씨’와 ‘염소’였어요(웃음). 하도 말라서 그런 별명을 얻었어요. 경기중학교 1학년 때 반장을 했는데 교장선생님이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아 “너 어떻게 사느냐”고 염려할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키는 138센티미터에 몸무게가 26킬로그램이었어요. 4·19혁명 때이고 병력이 좀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대담·정리=
김신용 기자 trustki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