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빨갱이’라는 한 마디로 모든 논의가 중단되던 시절이 있었다. 후보의 자질이 아무리 우수해도 정당의 정책이 아무리 비교 우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선거전이 중반에 접어들 때까지는 그랬다. 후보도 정당도 언론도 단 하나의 이슈에 매달려 다른 아무 것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단일 쟁점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워낙 사안 자체가 거대하다 보니 언론이 다른 의제나 쟁점을 개발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50%를 넘나들던 당시의 지지율대로 투표가 진행됐다면 열린우리당은 국회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할 수도 있었다. 정책도 없이 후보도 검증받지 않은 채, 여당은 탄핵 정국에 안주하고 있었다. 개헌도 가능하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음 직하다. 그러나 탄핵만으로 모든 것을 재단할 수 있을까? 언론만이라도 ‘여당’의 정책과 후보를 검증했어야 했다. 비록 그것이 인기 없는 작업일지라도.
후보·정책 비교검증 소홀
관심 지역의 후보를 비교적 소상히 알리고 비교한 방송과 신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개별 후보의 소개와 비교, 검증에 소홀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후보의 검증이다. 전체 후보군의 병역이 어떠니, 전과자가 후보 가운데 몇 명이니 하는 보도는 안이할 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올 위험성이 있어서 찬성하기 어렵다. 개별 후보의 검증이 방송은 뉴스 시간의 제약, 신문의 경우 지면 부족 때문에 어려웠다는 변명을 일단 받아들인다고 하자.
백 보를 양보해 정책 검증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책 검증은 2단계로 이뤄져야 한다. 우선 정책의 소개와 비교다. 최근 정동영 열린우리당 대표의 발언 이후 노인 복지 정책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선진국에서 수 십 년째 고민하는, 정말 어려운 과제 노인 복지 문제가 하루아침에 개발된 것인가? 아니면 해묵은 전가의 보도를 꺼내든 것인가? 정책이 각 당별로 차이는 없는가? 과연 현실성 있는 정책인가? 우리가 과문해서인가 아니면 기억력이 희미해서인가? 제대로 된 검증을 본 것 같지가 않다.
지난 92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이 공화당의 정책을 일부 차용함으로써 그리고 지난 97년 영국 총선에서 블레어 총재의 노동당이 보수당의전통적인 정책을 선점함으로써 정책의 단순 비교가 무의미해진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정책의 수렴 현상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런 부분을 짚어보면 재미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별로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다른 정당의 정책을 급히 베낀 정당에 대해서는 그만한 질책을 가해야 하지 않았을까?
정당 지도자 검증도 건너 뛰고
이번 선거는 아주 특수한 선거다. 정책 대신 각 정당들이 내세우는 상품이 ‘지도자’(당 총재 또는 대표)다. 현재 원내 교섭 단체며 17대 국회에서도 원내 교섭 단체가 될 것이 확실시되는 여야 3당이 모두 새로운 지도부를 맞자마자 선거를 치르고 있다. 박근혜-박세일, 조순형-추미애, 정동영-김근태, 모두 나름대로 장점이 많은 정치인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가 정당 지도자로서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인물임에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그들은 이미 나름대로 검증된 인물이라고? 대답은 Yes & No다. 그들이 받은 검증은 대통령 수석 비서관으로서 아니면 일개 지역구 의원으로서의 검증일 뿐이다. 이제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 나가야 할 공당의 ‘대표’로서의 검증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지도력, 조직력, 그들이 국민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들이 어떤 집단, 어떤 문제에 관심이 많은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지도부를 추궁하라
왜인가? 언론이 정당 지도자들을 따라만 다녔을 뿐,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인도 ‘스타’기 때문에 그 동정을 국민 대다수가 궁금해 한다. 언론도 국민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언론의 정당 지도자 동정 보도는 지나친 감이 있다. 시시콜콜한 동정 보도로 일관하다가 “○○○○하는 그녀가 아름답습니다”식으로 끝나는 연예가 중계 수준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물론 과거 지역 정치, 보스 정치의 폐해에서 벗어난 것만은 높이 평가해야겠지만.
12일 아침 동아일보는 ‘3인 3색’ 이라는 기획 기사를 통해 주요 세 정당의 지도자를 비교했다. 필자는 거기에서 취재 기자나 편집자의 정책적인 관심을 찾으려고 애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기대는 무너졌다. 나름대로 세 사람을 분석 비교하고, 전문가들의 인물평을 인용하긴 했으나 여전히이미지 비평 수준이었다. 같은 날짜 동아일보 여론조사 보도는 선거 막판의 문제점을 잘 지적했는데 말이다.
현상에 가려진 진실을 캐내지 않는다면 언론이 아니며, 비판이 없다면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왜 시장통에 갔는지 물어야 한다. “거기 표가 있으니까.”라는 솔직한 답을 듣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정당 대표라면 다른 답이 나와야 한다. “노인들이 하루 급식비 보조로 얼마 받는데, 그 돈으로 어느 정도의 식사를 하시는지 알고 싶었다. 예산 당국과 협의해 봐야겠지만 몇 % 정도 인상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 중이다.” 이 정도 돼야 정당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는 것 아닐까?
여론조사 보도의 선과 악
지난 1주일간의 보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기사는 중앙일보의 여론조사 결과 보도(9일자)였다.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율 여론 조사의 유혹이 큰 가운데 선거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였다. 역대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서서히 마음을 결정하는 선거일 D-7일의 시점에서도 ‘후보를 전혀 모른다’는 응답이 21%나 된다는 보도는 자못 충격적이었다. ‘후보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응답도 50%를 넘겼다. 언론 종사자로서 과연 선거 정보를 제대로 전달했는지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또 이 기사는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가 금지된 공식 선거운동 기간 중에 어떤 식의 여론 조사를 해야 할 것인지, 또 언론이 어떤 부분의 선거보도에 더 신경을 써야 할지 시사하는 바가 컸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큰 보도였다고 판단된다. 그에 반해 12일자 경향 신문의 판세 분석은 문제 있는 보도로 판단된다. 각 선거구별로 우세, 경합, 열세 등으로 분류함으로써 ‘될 사람 밀어주자’는 이른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를 낳는 보도, 경마식 보도의 전형으로서 자제돼야 할 것이다.
일부 방송 프로그램에서, 누구의 발언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특정 정치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보도를 함으로써 물의를 빚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이미 대통령 부인에 관한 문제 발언을 편집해 방영했다가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전력이 있다. 선거라는 민감한 시국인데도 이렇게 무신경하게 제작할 수 있는지 아니면 고의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볼 때 제작진의 무성의나 불성실은 총선보도 평가 이전에 기본적인 언론 윤리를 저버린 행위로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정보 제공이다. 다음이 의제 설정과 여론 형성이고 마지막이 감시 기능이라고들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번 총선보도에서 일부를 제외하면 언론은 이 기본적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셈이다. 실제로 한 주 두번씩, 4주째 접어드는 기자협회 총선 평가위원단의 토론에서도 정보 제공, 의제 설정, 감시 기능이 모두 미흡하다는 지적은 회의마다 빠지지 않았다. 이유가 없을 수 없겠으나, 기본에 약하다는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점에서 언론도 예외가 아닌 것 같아 개운치 않다. 언론은 영원히 우리 사회의 수준, 우리 선거 수준을 뛰어 넘을 수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