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여성정치시대’, ‘핑크리더 시대’를 맞아 여성계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여성계는 여성의 정계 진출 확대에 대해 ‘남성 중심적 한국정치의 퇴거’라며 일단 반기고 있지만, 전문성과 대표성을 무시한 감성정치·이미지정치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정치권의 마구잡이식 영입의 결과일 뿐이라는 지적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17대 총선의 경우 지역구 66명과 비례대표 91명을 합해 모두 157명의 여성 후보가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나섰다. 여성계는 이 가운데 지역구 10석, 비례 28석 등 전체의 15% 정도에 해당하는 여성국회의원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성의 활발한 정계 진출에 대해 한국여성개발원 김원홍 박사는 “그동안 남성 위주의 정치권에서 저질러진 부조리와 부패 등은 남성정치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며 여성들에 의한 ‘생활정치’로의 변화를 지지했다.
김 박사는 “정치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서 특권층에 의한 것이었던 반면 점점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정치로 무대를 옮겨가고 있다”며 “여성의 정치참여가 정치에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리더십을 찾는 시도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고은광순 대표운영위원은 양적 성장이 곧 질적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유엔이 권고하는 30%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은 위원은 “여성의 목소리가 정책화되고 주류로의 발돋음도 가능할 것”이라며 여성계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는 또 “여성 후보 내에서도 희소성을 기득권으로 삼아 정계에 진출하려는 반여성주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며 전체 여성계를 도외시하는 일부 현상에 대해 경계를 당부했다.
성균관대 정현백 교수(역사학)는 9일자 서울신문 ‘여성정치인의 시대인가’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확대’에 못지않게 ‘맑은 정치의 구현’이 중요한 화두”라며 “여성을 보다 많이 국회에 보내야 할 뿐 아니라, 우리가 뽑는 여성은 맑은 정치, 여성주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선량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당사자인 여성유권자들이 먼저 감시와 견제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여성의 정계 진출 확대에 대해 여성계 내부에서 조차 대표성과전문성이 결여된 부적격 인사가 위기모면용, 감성정치용으로 발탁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성주의 사이버저널 ‘일다’의 조이여울 편집장은 “여성이 대변인이나 대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국민들의 여성의식이 높아져서라든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며 “주변 사람의 후광을 업거나 정치권의 일시적인 필요에 의한 수적 증가를 두고 ‘여성정치시대’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의 상황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향후 여성의 정치참여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조현옥 대표는 9일자 여성신문 ‘여성정치전망대’에서 “(여성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남성보다 폭력적이고 수구적인 태도로 나갈 때 이제 막 싹을 튀우기 시작한 한국의 여성정치세력화에 큰 짐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제는 어떠한 여성들이 바람직한 여성 대표인가를 따져보기 시작할 때”라고 비판적인 시각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