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통한 네티즌들의 의사표현이 활성화되면서 ‘댓글’(리플)을 인용한 아전인수식 보도가 언론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댓글’ 인용은 네티즌들의 다양한 의견을 직접 인용해 여론을 반영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자사 입맛에 맞는 의견만 인용하거나 의도적으로 기계적 형평성을 맞추는 등 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또 네티즌을 익명으로 표기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는 관행은 줄어들고 있지만 글 전체의 맥락을 훼손하는 소위 ‘따옴표 저널리즘’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통령 탄핵이나 총선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이 많아지면서 네티즌들의 의견을 특정 정치적 의도를 확대·재생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2일자 ‘짜깁기 편집 이어 엉뚱한 인터뷰 물의’ 기사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한 여러 종류의 네티즌 반응 가운데 “국민을 50년대 무지몽매한 국민으로 업신여기지 않고는 이런 졸렬한 선동방송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댓글 만을 인용했다.
동아일보의 지난달 31일 ‘KBS-MBC TV 편파논란…야 패러디물 방송하며 비난성 자막’ 기사 역시 방송에 항의하는 네티즌 2명의 글만을 일방적으로 인용하면서 방송을 비판하려는 자사 보도의 논조를 보강하는 형식을 띄었다.
상대적으로 ‘댓글’ 인용 빈도가 높은 스포츠신문의 경우 ‘일부 네티즌’, ‘대다수 네티즌’ 등을 거론하며 의견을 일반화시키고 있어 결과적으로 오보 또는 기사조작의 위험도 높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03년 10월 한 스포츠지 기자가 축구전문 사이트인 ‘사커라인’에 오만전 패배와 관련 한국축구팀을 비방하는 글을 올린 후 이를 자신의 기사에 재인용, ‘기사조작’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밖에 네티즌 의견이 일방적으로 쏠리는 사안에 대해서도 언론이 의도적으로 기계적 형평성을 맞춰 대등한 공방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방송을 내보낸 후 시청자게시판에는 방송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댓글이 훨씬 많았으나 일부신문들은 긍정반응과 부정반응을 하나씩 소개해 찬반의견이 팽팽한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동아일보는 6일자 기사 ‘MBC 박정희 비판 프로 연속 방영…시청자들 “하필지금”…’에서 시청자게시판을 통해 권 모씨가 방송시기와 내용왜곡을 문제 삼은 글을 인용한 후, 프로그램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 모씨의 글을 덧붙였다.
조선닷컴도 5일 ‘MBC박정희 비판 프로 “하필 왜 지금”’에서 동아일보와 동일한 권 모씨의 글만을 인용하면서 방송 전부터 방영연기를 주장해 온 자사 논조와 맥을 맞췄다.
이처럼 특정 논조에 살을 붙이기 위한 수단으로 네티즌 글을 악의적으로 인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관행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언론재단 이기형 연구위원은 “무분별한 네티즌 인용도 ‘따옴표저널리즘’으로 볼 수 있고 특히 특정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을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왜곡된 정보 전달이 될 수 있다”며 “자사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 취합해 온 기자들의 자기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