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4일자 1면에 이례적인 사과문이 실렸다. 평화방송 이도준 기자가 '언론대책' 문건을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에게 전달하기에 앞서 이회창 총재와 먼저 상의했다는 요지의 전날자 1면 머리기사가 오보라며 한나라당에 사과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에 앞서 3일 낮 강천석 편집국장 등 편집국 간부들이 한나라당을 직접 찾아가 사과하기도 했다. 언론계는 잘못된 보도를 즉시 바로 잡은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극히 이례적인 태도에 속내를 궁금해 하는 눈치다.
한 조선일보 기자가 설명한 상황은 이렇다.
2일 저녁 강천석 편집국장은 "이 기자가 이 총재와 먼저 상의했다"는 요지의 첩보를 접하고 취재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김창기 정치부장 직대(이혁주 정치부장은 병가)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보고, 기사화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건은 강 국장과 이 부장이 퇴근한 뒤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밤 10시 47분 연합뉴스가 이 기사를 타전한 뒤 밤 12시가 넘어 회사로 들어온 김민배 정치부차장이 야간국장인 오중석 문화부장에게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했다.
오 부장은 연합뉴스에 이미 기사가 나온 것을 확인하고 출고토록 했다. 오 부장은 이 과정에서 강 국장에겐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타사 기자들은 야간국장이 1면 머릿기사를 바꾸면서 편집국장에게 전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의문을 제시했다.
다음날인 3일 간부회의에서 방상훈 사장은 "100% 오보니 사과하라"고 지시했다. 강 국장은 오전 11시경 김창기 부장, 양상훈 차장과 함께 한나라당을 찾아가 이회창 총재에게 오보의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했다.
이에 이 총재는 "솔직히 인정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당당하게 처리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조선일보는 4일자 가판부터 사과문을 게재했으며 이날 김대중 주필도 전화를 걸어 이 총재에게 사과의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타사 정치부 한 기자는 "연합뉴스에 기사가 나온 것을 보고도 기사를 쓰지 않기는 어렵다"며 "낙종을 두려워 한 나머지 오판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도하지도 않은 가판부터 사과문을 내고 주필, 편집국장이 직접 사과까지 한 것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반면 연합뉴스는 확신을 갖고 쓴 기사임을 강조했다.정치부기자들은 "취재원을 비롯한 4~5군데에서 확인 과정을 거쳤으며, 한나라당 입장을 반영한 기사 작성 후에도 거듭 확인한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한나라당측에는 "야당총재를 흠집내기 위해 고의적으로 작성한 기사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는 한나라당이 제소한 만큼 언론중재위에서 결정날 문제로 보고 대체기사나 사과문은 계획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