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거여견제’, ‘진보정당 원내 진출’이란 특징과 함께 유권자가 무엇보다 요구하는 것은 ‘상생의 정치’라는 총선 민의를 확인시켜 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15일 막을 내렸다. 언론 매체간, 각 언론사간 치열했던 선거 보도 경쟁도 함께 갈무리됐다. 이와 함께 지난달 26일 시작됐던 ‘2004년 총선보도 기협 평가단’도 활동을 마무리 짓게 됐다. 본보는 평가단의 그간 활동을 정리하고 향후 우리 언론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최종 좌담회를 마련했다.
■ 일 시=2004년 4월 16일 11시
■ 장 소=기협 회의실
■ 참석자
김영호 평가위원,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김구철 평가위원, KBS 기자, 기협 부회장
김동훈 평가위원, 한겨레 기자
■ 사 회=김진수 본보 편집국장
△김진수=그동안 총선 평가단의 일원으로 고생이 많았다. 역사적인 17대 총선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좌담회를 준비했다. 먼저 이번 총선에서 느낀 점을 개괄적으로 말씀해 달라.
△김영호=이번 선거도 역시 당 대표 중심의 보도가 주를 이뤘다. 국회의원 선거가 마치 대통령 선거와 같은 양상을 띠었다. 또 탄핵 정국의 영향이 너무 거대해 정당의 정책이 실종 됐다.
지역주의 바람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거셌다. 호남이 민주당 대신 열린우리당을 선택했을 뿐 지역감정은 여전히 곳곳에서 드러났다. 여기에 여론이 ‘바람몰이’를 하며 지역감정을 조장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박풍’ ‘호풍’ ‘탄핵풍’ ‘노풍’ 등을 여과없이 일상처럼 보도해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언론이 자사의 당파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도 이번 선거 보도에 있어 하나의 특징이다. KBS MBC 등 방송사가 한 축이 되고, 조중동이 다른 한 축이 돼서 자사가 지지하는 세력에 유리하게 보도하는 경향을 보였다. 당파성에 의존한 몰가치적 보도였다. 향후 정국 운영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경향이 나타나면 곤란하다.
또 이번 총선에서 금권선거가 사라진 경향이 뚜렷했다. 선거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반면 언론이 이를 간과하고 선관위가 발표한 선거법 위반 건수 등만을 근거로 보도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선거법이 강화됐기 때문에 선거 운동이 훨씬 깨끗해졌어도 선거법 위반 건수는과거보다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이 선거에 대해 실제보다 나쁜 인상을 심고 있다.
△김동훈=언론의 역할은 유권자들에게 정책을 바로 알리고, 이른바 ‘이미지 정치’ 시대를 맞아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에 대한 검증과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17대 선거 과정에서 이미지 정치의 폐해가 거론되고 있는 만큼 언론도 이에 따른 공과를 평가 받아야 한다.
반면 과거에 비해 언론의 편파, 편향성은 많이 줄어 든 것으로 보인다. 당파성에 의한 언론사간 갈등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나쁜 점이 많이 줄었다.
다만 지역주의 타파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오히려 지역주의를 부추겼다는 점은 아쉽다. 더구나 16일자 신문에 몇몇 언론사들 외에는 선거결과가 동서구도로 극명히 갈린 사실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
이번 총선 선거운동의 특성은 한마디로 ‘공갈 자해정치’가 아닌가 싶다. 삼보일배, 단식, 손에 붕대감고 악수하는 행동 등이 자기 몸을 자해해 국민들을 협박해서 표를 얻어 낸 것이다. 이런 이미지 정치에 대해 언론의 지적이 없었고 있더라도 너무 무뎠다. 지역갈등과 함께 ‘노인풍’으로 대표되는 세대갈등의 심화에도 언론이 한 몫을 했다.
△김구철=언론이 비례대표에 대한 검증을 하지 않아 유권자들이 비례대표에 대해 잘 알 수 없었던 점도 두드러진 문제였다. 이들은 투표를 통해 유권자들로부터 직접 검증도 받지 않았다. 무임승차한 것과 마찬가지다. 앞으로라도 이들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대부분 직능 대표성도 갖고 있지 않다. 특히 농업에 대한 직능 대표성을 가진 비례대표는 거의 없다.
명단과 화제성 보도가 난무할 뿐, 긍정적으로 바뀐 선거 제도를 언론이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김동훈=동감이다. 비례대표 후보자 가운데는 부적격자들이 쉽게 눈에 띄는 데도 언론이 검증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인물평 정도가 고작이었다. 교수들이 비례대표 후보의 절반 가량을 차지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대해 정색을 하고 비판하는 경우도 없었다.
△김진수=선거과정에서 신문과 방송의 치열한 대립전을 펼쳤다는 우려가 있다. 언론 매체간에 대립하게 되면 실제 전위에서 싸우는 것은 결국 일선 기자들이다. 기협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총선결과를 보면, 언론도 개혁은 하되 상생하는 언론개혁이 돼야한다는 메시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동훈=MBC와 조선일보로 대표된당파성이 유권자인 독자나 시청자에게 얼만큼 설득력이 있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자사의 과거 보도 태도에 대한 반성 없이 특정 언론사의 현재 태도만을 문제삼는 보도가 유권자들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갈등을 부추긴 것 같다.
△김영호=언론 보도 역시 틀림없이 개혁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관에서는 선거보도 심의위원회가 감시하고 있고, 시민사회도 언론을 예의 주시하고 있어 노골적인 편파보도도 많이 사라졌다. 이것이 언론개혁으로 가는 길이다. 계속 변해야만 한다.
궁극적으로는 언론이 당파성을 벗어나야 한다. 입으로는 편파보도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강한 당파성, 정치성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권언유착 고리가 두터웠으며 여전히 이와 같은 구시대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스스로 권언유착을 청산하고 진정한 언론으로 거듭나야 한다.
△김구철=이 문제는 언론비평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언론의 권력화 현상으로 엄청난 권력을 가진 언론이 자사를 향한 비평을 비평으로 받지 않고 비난과 공격 일색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치비평, 경제비평 등 어떤 곳에도 합리적이고 정당한 비판은 존재하는데 언론은 스스로 권력화 돼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김진수=총선 결과, 기자 출신만 보자면 61명이 출마해서 31명, 50.8%가 당선됐다. 또 매체별 당선자를 보면 상대적으로 동아·중앙과 KBS·MBC 출신이 많다.
△김동훈=특히 초선 중에 방송사 출신들이 많다. 또 지역구보다는 비례대표가 많다. 이미지 정치에 방송사 출신 언론인을 이용한 단적인 예다.
△김영호=이미지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각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TV로 이미 얼굴이 알려진 인사를 중용했다. 언론에 비친 모습이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다. 정치가 미디어정치의 의미를 왜곡, 이용해 대중들을 호도했다. 언론인은 언론 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이 지녀야 한다.
△김구철=선거법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이 2주 뿐이다. 선거기간 이전부터 미리 알려진 후보가 월등히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선거비용을 줄이기 위해 선거기간을 줄이는 점은 바람직하지만, 언론이 인물을 점검해 유권자들에게 자세히 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김진수=총선 이후 언론이 풀어야 할 과제와 일선 기자들에게 특별히요구되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달라.
△김영호=언론개혁 차원에서 1인 지배체제인 신문사들의 소유지분제한을 관철시키고, 여론독과점을 사전에 차단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중파인 방송사가 세습되는 것도 안된다. 공중파이기 때문에 소유구조를 더욱 분산시켜야 한다.
또 선거 과정에서 언론은 역사적 소명과 시대정신의 부족을 스스로 드러냈다. 언론이 정치를 견인하고 사회 전반의 변화를 추동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선거과정에서 언론의 태도는 관습과 관행을 답습하는 등 대단히 비민주적이었다. 성숙한 사회로 나가기 위해 언론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재차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동훈=17대 국회에서 언론계의 가장 큰 화두는 정간법 개정 문제일 것이다. 이와 함께 소유구조와 관련 조중동 등이 정치권과의 일대 격전을 치를 것도 예상된다.
△김영호=소유구조와 여론시장 독과점 완화가 진행될 것으로 본다. 상황은 16대 때 보다 훨씬 좋아졌다. 이 문제에 대해 제 1당과 3당인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김구철=이번 선거보도에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역시 방송사의 출구조사였다는 점을 아프게 지적하고 싶다. 출구조사 결과 발표가 2000년에 이어 또 다시 오류가 났다. 16대 때 큰 곤혹을 치렀는데도 다시 같은 오류를 저질렀다. 작은 실수인 것처럼 보이지만 언론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변명이라면 우리나라는 출구조사를 통해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데 한계가 있다. 외국의 경우는 전언론사가 풀제로 출구조사를 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그렇지 못한 것이 기본적인 한계다.
△김동훈=우리의 경우 권위주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여전히 정치적인 자기 표현을 꺼려 여전히 자신의 투표 결과를 공개하기를 거부하거나 감추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언론이 너무 선정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언론이 이를 고려해서 스스로의 신뢰성을 재고해야 한다.
△김진수=끝으로 과거에 비해 좋았던 언론보도도 소개를 해 달라.
△김동훈=여전히 미약하지만 선거 막바지로 가면서 과거에 비해 정책관련 보도들이 많이 나왔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방송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한정된 시간을 할애해서 보도하려는 의지를 많이 드러내 보였다.
△김구철=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보도가 많이 줄었다는 점도바람직하다. 다만, 방송의 경우 공중파란 점을 간과하지 말고 선거기간 만이라도 연예 오락 프로 등을 줄여 선거 관련 방송 시간을 늘리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이러한 노력이 유권자 중심보도다.
△김영호=선거과정에서 부산일보 기자들이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편향 보도한 것에 대해 저항한 점 역시 빼놓아서는 안된다. 지역주의 부활을 경계하고 편집권 독립에 대한 의지를 거듭 보여준 이들의 노력은 반드시 긍정적으로 평가돼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