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용천역 주변은 폭격 맞은 전쟁터 그 이상이다. 엿새가 지났지만 응급 복구의 포크레인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파편에 맞거나 폭발 열상을 입은 수천명의 환자는 신음소리 마저 힘겹다. 음료수병이 링거병으로 쓰인다. 마취제가 없어 수술도 못하고 있다. 긴급한 처치가 필요한 화상 환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열악한 병실에 누워만 있다. 부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용천 소학교 어린이들은 병실 침대가 부족해 캐비닛위에서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고 세계식량계획(WFP) 관계자는 밝히고 있다.
이 망연자실한 참담함을 어찌해야 하나. 현재까지 161명이 죽었고 부상자 1300여명중 중상자 370여명은 목숨이 경각을 다투고 있다. 북한 용천역 폭발참사는 북한을 바라보는 남쪽 국민들의 시각과 염려를 새롭게 해주고 있다. 이제 북쪽의 대형 사건이 북한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남한 사회를 조망하는 시각의 연장선이 금강산 개성 평양을 거쳐 신의주 용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작금 북한은 궁지에 몰려 있는 형국이다. 평양 시가지에 걸려있는 ‘결사옹위 일심단결’ 등의 대형 입간판 구호가 그 처지를 잘 대변한다. 전체주의적 동원 시스템속에서 농업생산력은 주저앉고 있다. 북한의 산업설비의 가치는 한국의 0.4%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국은행은 분석하고 있다. 2천만 명을 넘어가는 북한 인구 중에서 절대다수가 먹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용천역 참사현장에서 재건의 중장비는 보이지 않고 소달구지에 땔감을 챙겨 싣고 가는 안타까운 현장사진은 남쪽의 우리들을 슬프게 한다. 장군님의 은혜만을 고대하며 우왕좌왕하는 북측의 복구프로그램 미비는 우리들을 가슴 아프게 한다.
시의적절하게 남한의 언론매체들은 ‘민족의 반쪽’을 위해 신속하게 구호의 손길을 펴고 있다. 신문과 방송은 성금을 모금하고 의연금품을 접수하고 있다. 기초의약품이 턱 없이 부족하고 응급의료체계의 낙후된 처지를 체제의 경직성으로 탓하지 않고 우선 가슴으로 우려하는 보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분명히 이번 용천역 참사보도는 남한의 전 매체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조하고 있다. 북한체제에 비판적인 보수 시민단체마저 구호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는 통일을 향한 분명한 진전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확연하다. 한국의 매체들은 북측의 체제 폐쇄성으로 인해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특파원들은 북-중접경인 단둥 압록강 철교 근처에서만 취재하고 있는 형편이다. 애타는 심정에서 파편처럼 전해지는 조각 보도는 안타깝다. 북한 당국의 솔직한 태도가 긴요하다. 북녘 동포들의 어려움을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수용하는 북한 당국의 제한적이고 조건부적 선별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겨레의 반쪽을 향한 순수한 민족애로 받아들여할 것이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진정한 ‘민족 공조’가 가시화되도록 북한 당국은 열린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우리 스스로 발등에 떨어진 참사로 여기는 한국 언론에게 보도의 빗장이 열려야 함을 의미한다. 체제 옹위만을 의식한 대외적 과잉 적대감은 북한 주민과 북 당국에게 결코 도움 되지 않는다.
우리 언론들도 이번 용천역 참사를 계기로 북한 원조프로그램을 긴 호흡으로 짜야 한다. 일회적 구호 이벤트로 끝나지 않도록 북한 전문 저널리스트를 다수 양성하고 보도전담 조직으로 대비해야 한다. 머나먼 통일의 대장정 와중에서 우리 언론의 향도역할은 막중하다. 참사현장에서 목격된 맥없이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해 속에 철근더미는 잘 보이지 않았다. 단 한번의 참사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불길한 전조이다. 북한 정권은 진정 인민을 위한 경중완급을 가리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북한 당국이 남쪽의 순수한 의도를 제대로 수용하여 바람직한 ‘민족공조의 학습효과’의 계기로 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