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는 없다. 언론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이어 제4의 권력이라는 표현도 이제는 낡은 느낌이고 민주 사회공동체에서 대중 매체의 기능은 인체에서 피의 순환에나 비견될 만 하다. 온전한 혈구들로 구성된 맑은 피가 흐를 때 그 인체는 건강하게 활동하지만 만약에 피가 오염되거나 순환에 장애가 온다면 건강 뿐 아니라 생명까지도 위협받는다. 그러한 중요성 때문에 인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고 수호하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피나는 투쟁을 해 왔으며 고르바초프가 사회주의의 재건을 위해 가장 먼저 내세웠던 구호도 글라스노스찌, 곧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유였다.
우리의 언론자유는 지금 어느 상황에 놓여 있는가. 헌법에 그 자유가 명시되어 있고 여러 가지 세부적인 법적 장치들이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 대한민국이라고 불리우는 사회적 몸통에 흐르고 있는 피는 맑고 온전하며 그 순환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은 없는가.
군사독재 시절에는 우리 모두가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힘은 부당한 정치권력에서 온다고 믿었다. 하지만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연이어 들어섰고 어느 누구도 잘못된 글을 썼다는 이유로 잡혀가거나 해고 당하는 일은 없는 세상이 되었건만 아직도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모습으로 언론이 살아나지는 못하고 있다. 주요 신문사들은 모두 친 야, 주요 방송사는 친 여 세력으로 양분되어 서로 으르렁 거리며 싸우는 기괴한 풍경은 언론을 다시금 신뢰가 아니라 질시와 기피의 대상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런 가운데서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게된 국회는 언론개혁을 위해 신문사 사주들의 권한을 대폭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다시 상정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주요 신문사 사주들의 영향력만 제거한다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이 땅에서 만개 할 것인가. 신문사 사주라는 사람들이나 그들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건전한 매체를 육성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기득권층의 이익 수호에만 급급하며 상대적으로 정부의 영향력이 큰 방송 매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독자적이며 객관적 자세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없는가.
유감스럽게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 하다.예전이나 지금이나 힘을 가진 쪽이 언론매체를 자기들의 도구로 삼으려 하고 매체들 또한 힘 가진 쪽의 눈치를 보는 것은 여전한데 다만 권력의 소재가 조금씩 옮겨갔을 뿐이다. 이제는 국가 기구나 사업주가 직접 동원 할 수 있는 힘이 아무리 커도 감옥에 보내거나 해고 시킬 만큼은 안되지만 대신 물불을 헤아리지 않는 이익집단들이나 인민 재판식 여론의 압력을 견뎌 내는 일은 결코 전보다 덜한 곤욕이 아니다. 전자가 극한에 달했을 때의 종착점이 타살이었다면 후자의 종착점은 자살인 차이가 있을 뿐이니 여간한 도덕적 용기가 없이는 심한 눈치보기나 무의식적 추종을 여전히 계속 할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새로운 위험은 스스로가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믿는 세력이 점점 더 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수라도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자초하는 일임을 외면 하는 것이다. 그런 공동의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모두가 합심하여 공동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인이기 보다는 지성인으로 자처해야할 언론인들에게는 진보니 보수니를 따지는 일 보다 급선무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