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의 생명은 ‘속도’가 아니라 ‘안전’이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시속 3백km는 ‘재앙’으로 이어질 게 뻔해보였다. 하지만 취재는 쉽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워낙 낯선 기술인데다, 전문가 대부분은 고속철 관계자들이었다.
다행히 선이 닿은 고속철도 내부자의 고백은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고속철의 핵심부인 동력전달장치에 물이 스며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철도청이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결함이 발견되면서 반 이상의 열차가 ‘시험운행 불가판정’을 받고 있었다. 철도청의 정비기록을 단독 입수해 이같은 사실을 증명했다.
첫 보도가 나가자 철도청 관계자는 ‘국민적 불안감’을 조장한다면서 펄펄 뛰었다. 그런데 통화중에 그는 동력장치 문제 말고도 고속 주행시 선로의 자갈이 날리면서 이리저리 튀는 현상도 있다고, 묻지도 않은 얘기를 해줬다. 모두 별 것 아니라는 투였다. 하지만 작은 충격이 화재나 탈선으로 이어진 외국 사례에 비추어 중대한 결함이었고, 곧바로 기사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도청 간부들의 태도는 더 문제였다. 대전에서 만난 한 고위 간부는 4월 1일 조기 개통에 차질을 빚을 경우 책임을 진다는 뜻으로 동료들과 함께 사표를 써냈다고 자랑했다. 군사독재 시절 얘기인 듯했고, 그만큼 안전문제는 뒷전인 것 같아 불안했다. 철도청의 ‘개통 강박증’은 끝내 고속철 차량에 대한 축소검사 지시로 이어진다. 차량 전체에 대한 그동안의 완전검사가 최종점검에서는 선두 기관차만 점검하는 간이검사로 완화됐음을 확인했다.
개통과 동시에 각종 사고와 운행차질 사태가 잇따르면서 역설적으로 CBS 보도가 사실로 확인돼 씁쓸한 기분이다. 이번에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뤘던 터널과 건널목의 미흡한 방재 시스템은 반드시 되짚어 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