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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비정규직 그들은… ]

파견·계약·일용직 고용불안 심각

조규장 기자  2004.05.06 11: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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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올해도 수백명 해고 예정…4대보험·퇴직금·시간외수당 전무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가 이른바 ‘사각지대’로 통칭돼 온 것은 방송사내에 거의 모든 형태의 비정규 고용형태가 존재하고 업무의 범위가 넓어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격차는 타 업종에 비해서도 큰 편이다.

방송사 비정규직노조에 따르면 전국 지상파 방송사의 비정규 종사자는 1만5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언론계에서는 KBS와 MBC가 절반이상을, SBS는 3분의 2 이상을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비정규직 중 현재 가장 큰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직종은 파견직이다. 노동부가 1998년 제정한 파견법의 취지는 2년 이상 동일업종에 종사하면 고용으로 인정하라는 것이지만 방송사는 이를 2년 전에 해고하는 방식으로 악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00년에 KBS 2백27명, MBC 1백60명, SBS 4백35명, YTN 37명의 파견근로자가 해고됐으며, 2002년의 해고에 이어 올해에도 3백50여명의 해고가 예정돼 있다. 각 방송사의 여 사무보조, 촬영보조, KBS·MBC 운전직 등이 모두 이에 해당된다. KBS 운전직만 해도 올해 4∼6월 동안 해고대상이 16명이다. 이에 따라 2년 단위로 방송사들을 순회하면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회사측에서는 대개 2년 만기 한 달 전에 해고통지서를 보내는데 “통지서를 받고 나면 한 달 동안 핸들이 안 잡힌다”는 말이 적지 않게 나온다.

게다가 도급형태를 띤 불법파견도 성행하고 있다. SBS 운전직, MBC 안전관리부 등이 대표적. 이들 부서의 경우 용역업체에 명목상 도급을 주고 매년 재계약을 통해 정기적 해고를 면하고 있지만 방송사에서 직접 관리감독은 물론 일부 인사에도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불법으로 볼 수 있다.

MBC와 SBS 계열사에 집중된 한시계약직도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5년 단위로 계약하고 있지만 2번 이상 갱신된 경우는 거의 없다. 서울미술고등학교의 기간제교사 계약갱신 거절에 대해 대법원이 2003년 위법으로 판결하는 등 ‘계약이 수차례 반복 갱신될 경우 고용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판례들이 있어 방송사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MBC의 경우 2백70명의 계약직 중 약 1백50여명의 한시계약직에 대해 계약만료 시점에서퇴사와재입사의 반복을 강요하는 것은 물론 근로계약은 처음에 한번만 하면서도 임금계약은 1년 단위로 하는 등의 편법을 통해 고용부담을 줄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른바 바우처로 불리는 ‘일용직’들이다. 프로그램단위로 고용된 AD, FD, PD, 작가, 스크립터 등이 이에 해당된다. SBS의 경우 보도제작국 한 부서의 정규직은 전체 30명중 8명, 한 시사교양국의 경우 20명 중 2명에 불과하다. SBS는 또 이 같은 프로그램 단위의 일용직들만 5백명 이상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부분 담당PD가 인사권한을 쥐고 있어 해고에 대한 법적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은 계약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주급산정으로 돈을 받고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결방되는 주에는 출근은 하면서도 임금은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밤샘작업과 주말근무가 흔하지만 시간외수당과 휴일수당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고 퇴직금과 4대보험 혜택도 없다.

실제로 2002년 KBS의 한 FD가 현장에서 감전사고로 숨졌지만 회사에서 들어준 상해보험만 적용받았을 뿐이며 같은 해 과로로 사망한 EBS 조연출 K씨 역시 4대보험을 적용받지 못했다. 파견직과 도급직도 산재처리를 꺼리고 있다. 산재처리가 누적된 용역업체의 경우 방송사와의 재계약에서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처럼 방송사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근무형태가 심각한 수준이지만 방송사는 적극적인 문제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방송사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는 예비 인력이 넘쳐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매년 방송특화대학과 방송아카데미 등에서 배출하는 ‘산업예비군’이 수만명에 이른다.

이와 관련 SBS에서 PD(바우처)로 근무하는 A씨는 “가장 사람을 쉽게 알고, 쉽게 쓰는 곳이 방송사”라며 “회사에서는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많으니까 일하기 힘들면 나가라’고 말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