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큰 눈에 / 이 숲의 늙은 괴목이 쓰러졌지요 / 늙은 괴목이 쓰러지면서 / 나무가 살아온 오랜 세월도 함께 쓰러져 / 눈 속에 깊이 깊이 파묻혔지요 / 어느새 이 숲에 새들의 지저귐이 살아날 때 쯤 / 눈은 녹고 / 개울의 흐름을 보태었지요
-유자효 <봄의 찬가> 중에서
“섬은 여의도를 말하지만 늘 혼자일 수밖에 없는 시인의 외로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의도 방송사에 근무지를 둔 시인들이 ‘시인의 섬’(대표 박준영)이란 이름으로 한달에 한번씩 모이기 시작한지 4년이 넘었다. 언론사 중견급인 이들은 매달 첫째주 목요일이면 여의도의 한 청국장집에 모여 시와 시단에 대한 한담도 나누고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기회도 갖는다. 모임에 나오는 이들은 방송위원회 박준영 상임위원, SBS 유자효 논설위원장, 이수익 전 KBS 라디오 제작위원, MBC 보도국 김주태 차장 등 모두 13명.
언론인으로서 바쁜 일상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지만 굳이 시를 고집하는 건, 굳이 모임을 고집하는 건 ‘자기만의 세계’에 대한 고집 때문이다. ‘늦깎이’ 박준영 시인은 “나날이 바쁜 생활이지만 그 세계에서 자유와 희열을 느낀다”며 “소탈하면서도 자유로운 품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다들 시집 한두 권씩은 출간했고 모임을 가져 온 4년 간 어느새 공동시집도 한 권 묶어냈다. 지난 2002년에는 신사동 어느 갤러리에서 시화전도 가졌다.
“방송국이라는 조직사회에서도 이런 운명의 사슬에 손발이 묶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맡아야 할 직업적 책무 앞에서 열심히 일하는 한편, 시라는 예술 형태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본질적 욕망에 깊이 시달린다.” 공동시선집 ‘붉은 추억 果 나무’에서 이수익 시인이 토해 낸 말이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사람들이 타 직종에 비해 기자사회에 유독 넓게 포진해있지만 정작 창작활동을 위한 모임은 찾아보기가 힘든 게 현실이란 점에서 이들의 활동은 선후배들의 관심거리다.
소설을 쓰고 있는 신문사 한 중견 기자는 “기자들의 경우 다른 일을 한다는 게 회사에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창작활동을 하기가 힘들다”며 ‘시인의 섬’에 대한 부러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