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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협 인터뷰} 고희범 한겨레신문 사장

"신문 공배제 꼭 필요하고 반드시 실현돼야"

정리=김창남기자  2004.05.12 10: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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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지분 제한 언론개혁의 한 부분일 뿐

한겨레 정체성 진보 보다 공정·신뢰 더 중요

중앙, 재벌신문 이미지 개선 노력을







15일 ‘한겨레 창간 16돌’을 맞아 10일 오전 11시 한겨레 8층 사장실에서 고희범 사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날 인터뷰는 한겨레 최영선 경영기획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60분 동안 진행됐다.

고 사장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다정한 ‘선배기자’와 같은 분위기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언론개혁 문제와 공동배달제 등에 있어서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소신 있게 의견을 피력했지만 퇴직금 중간정산제와 같은 한겨레 내부문제에 있어선 말을 아끼는 등 신중한 모습이었다. 고사장은 자신을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한겨레의 창간정신을 지켜가려는 많은 한겨레 일꾼들의 대표라고 소개했다. 고 사장은 배가 조금도 나오지 않은 등 건강해보였는데, ‘싸이클’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담=김진수 본보 편집국장







지난 총선 당시 보수신문과 방송사간 논조대립이 심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감정싸움 양상까지 보였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보수신문과 대척점에 있는 한겨레의 사장으로서 이러한 매체간 대립을 어떻게 보십니까.

논조 대립이니, 감정싸움이니, 매체간 대립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지난 총선보도에서 나타난 양상은 ‘여전히 정치권에 훈수를 두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하는 보도’와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도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판단의 준거를 제공하고 싶어 하는 보도’ 사이의 차이가 존재했을 뿐입니다. 총선 이전의 대통령 탄핵에 대한 보도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 시청자들이란 정확한 정보만 주어지면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해서 행동할 수 있는 계층입니다. 사실을 왜곡해서 보도하면서 어떤 특정 입장을 강요한다고 해서 독자나 시청자들이 언론이 제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겸손하게 독자나 시청자들의 의견과 판단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총선 이후 언론개혁 문제가 또다시 우리 사회의 핵심의제로 떠올랐습니다. 예컨대 언론사주의 소유지분을 25%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도 있는데요….

언론사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 문제는 이미 오래된 의제입니다. 입법 조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업 및언론환경,예컨대 SBS의 사례 등에 비추어보면, 사주의 지분을 25% 이하로 제한한다고 해서 사주의 경영 및 편집(편성) 지배권이 근본적으로 제약을 받거나, 그래서 언론개혁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은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여러 개혁 조처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소유지분 제한 이외에 정보의 독과점 규제책이나, 신문공배제의 법제화, 공정거래 위반행위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의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합니다.

특히 신문공배제는 신문시장 정상화는 물론, 신문사 입장에서는 판매조직 관리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법제화를 통해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값비싼 경품제공이나 6개월 이상의 무료 제공 등 공정거래 위반행위로 신문시장의 혼탁상은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서 독자들은 신문을 경품 없이는 사지 않는 상품으로 여기게 됐고 6개월에서 1년씩 무료로 받아보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심지어 자동이체를 조건으로 구독료를 월 1만원으로 할인하면서 조선 중앙 동아가 1만원으로 구독료를 사실상 인하했습니다.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1만2천원의 구독료를 올리기는커녕 값을 내린 것은 덤핑인데도 공정위의 단속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서슬퍼런 공정위가 조중동을 무서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정위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언론개혁은 우리 사회 핵심의제로 떠오른 게 사실입니다. 저는 앞으로 경품을 일체 쓰지 말고 확장을 위한 무가지도 10% 선으로 대폭 줄이자는 결의를 신문협회 차원에서 스스로 밝히고 이를 자율적으로 실천해 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신문협회가 언론개혁의 대상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로서 신문시장 정상화나 언론개혁의 차원에서 수용해 실천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총선 전과 비교해 볼 때 앞으로 참여정부와 언론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권력과 언론이 기본적으로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달라지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항간에는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일부 신문들이 논조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별로 관심 없는 일이어서 주의 깊게 살펴보지않았습니다. 다만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뛰어넘는, 이념과 노선의 다양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사실관계의 왜곡과 그에 따른 갈등만은 이제 사라졌으면 합니다.



한겨레 정체성은 한마디로 ‘진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체성이 예전과 달리 많이 퇴색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겨레의 정체성을 진보라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한겨레의 정체성을 이야기 할 때, 창간정신의 핵심요소라 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온 국민이 주인인 신문’으로서, 진보적인 이념성과 함께 ‘공정성’ ‘신뢰성’이 더 중요한 가치와 덕목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적인 이념이나 정책을 강조하기 이전에 모든 사안을 공정하게 보도하고 비판하는, 그래서 모든 사안에 대한 가치판단의 준거 틀로서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신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여전히 이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진보라는 관점에서 한겨레의 정체성이 퇴색했다는 지적에도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진보란 개념도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진보를 이념적인 진보 외에 삶의 질 향상, 우리 사회의 약자들 즉 여성 장애인 빈민 심지어 동성애자에 이르기까지 마이너리티의 인권보장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공배제를 위해 설립된 한국신문서비스주식회사가 참여 5개사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 공배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입니까. 아울러 중앙일보가 주도했던 구독료 인하 조치에 대한 사장님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신문시장의 정상화를 위해선 반드시 공배제가 실현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현재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 참여 5개사의 상이한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신문시장을 과점한 몇몇 언론사의 눈치를 살피는 관련 조직과 사람들 탓이 더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는 ‘신문고시’가 몇몇 신문사의 눈치를 살피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국회의 일부 기득권 세력 등에 의해 왜곡되어 실효를 거두지 못해온 것과도 상통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공배제를 추진해온 한국신문서비스㈜의 역량이 부족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많은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의 이론을 판매 현장에적용하는 데서도미숙함을 보였고, 참여 5개사의 판매국 인력들을 공배제의 대의 아래 묶어세우는 데서도 적잖은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조직을 정비하고 판매 일선의 모든 역량을 하나로 묶어세우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공배제에는 현재 5개사가 참여하고 있지만 문호가 개방돼 있습니다. 이 기회에 ‘자력 배달체제가 미진한 경제지와 지방지’ 등 다른 언론사의 동참을 촉구합니다.

또한 ‘소수의견의 보호와 신문 유통구조의 안정화’를 위해서 국가가 공배제의 법제화에 앞서서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관련 예산도 무상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중앙일보의 구독료 인하 조처는 이미 몇 차례 분명하게 밝혔듯이, 자사의 자본력을 앞세워 신문시장을 독식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으로, 신문시장의 기본 질서마저 무너뜨리는 가격 덤핑 행위에 불과합니다. 중앙일보는 판매시장에서든 광고매출에서든 조선일보와 함께 이미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심지어 젊은 독자들 사이에선 조선일보의 ‘수구’ 이미지와는 달리 ‘시대의 변화를 나름대로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신문’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판매부수 1위’라는 허위의식에 얽매여 막대한 비용지출을 감내하면서 구독료 인하를 추진한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특히 홍석현 회장이 평소 신문시장 정상화나 구독료 인상 등을 주장해온 데서 바뀐 배경이 무엇인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특히 신문협회장으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사장 취임 당시 한겨레 경영변화 및 혁신을 기치로 내세웠습니다. 1년 3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 볼 때 자랑할 만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또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한겨레의 경영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일거에 타개하지 못하는 데 대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정당당 한겨레’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한겨레’라는 정체성을 유지 강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또한 구조적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한겨레 구성원들의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일 또한 중요한 시점입니다. 그동안 공동인쇄-공동배달의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결과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있다는 점도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물론 아쉬운 대목도 적지 않습니다만, 모든 것은 저의 능력 부족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한겨레는 지난 2002년 퇴직금 출자전환 이후 2003년부터는 퇴직금 중간정산을 약속, 사원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는데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떤 해결책이 있습니까.

한겨레 내부문제에 대한 질문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답변을 자제하겠습니다. 양해해주길 바랍니다. 다만 2002년 당시의 노사간 합의 내용 가운데 일부 문제점이 발견됐기 때문에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으며, 조만간 노조와 우리사주조합, 회사 경영진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원칙에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겨레의 신문판매부수를 놓고 볼 때 상대적으로 부산 대구 울산 등 영남권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입니까.

영남권 신문독자들이 한겨레에 대해 갖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한겨레 자체의 편집방향과 논조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남북한의 대립과 대결을 부추기고 남쪽의 동서마저 첨예하게 갈라놓은 냉전수구세력과 지역주의 정치세력이 조장한 허위의식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역사도 이들 분열주의 세력이 더 이상 득세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한겨레 스스로 다지고 또 되돌아보면서 공정하고 신뢰받는 신문으로 정진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저는 믿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지난 4월 1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겨레에 대한 ‘조언’을 했습니다. 국민주를 다시 모아 ‘제2창간’을 하면 ‘1등 신문’이 될 수 있다든가, 한겨레가 전체 신문시장 중 25%를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는 등이 주요 골자인데요. 홍 회장 발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홍석현 회장의 발언은 한겨레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선의의 조언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달리 보면 도를 넘는 엉뚱한 훈수일 수도 있습니다. 신문시장의 25%를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지금 같은 조중동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는 신문시장의 혼탁한 물량공세와 무차별적 경쟁 상황에서 좀 앞뒤가 맞지 않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이 기회에 저도 홍석현 회장에게 조언을 한다면 중앙일보가 더 이상 조선 동아와 함께 ‘보수언론’으로 분류되지않기를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중앙일보가 좀더 중립적이거나 개혁적인 논조를 유지하고 특히 재벌신문이라는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자체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이미지 극복을 위한 실질적인 조처들을 취한다면 굳이 판매부수 1위 욕심을 부리지 않더라도 신문시장 개혁을 선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겨레는 현재 2년마다 사장과 편집국장을 직선제로 뽑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양 선거가 조직내 파벌을 만든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한겨레 문제 중 하나는 경영안정화입니다. 대표이사는 2년에 한번씩 선출하고 있는데 경영안정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입니다. 또한 양 선거에 대한 부작용도 있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름대로 16년 동안 다듬어진 제도입니다. 물론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이 있어 다른 의견을 표현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선거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겨레 사장이 아니라 선배기자로서 기자협회 소속 전국의 7천여 후배기자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죠.

기자 생활을 처음 할 때 기자는 샐러리맨이 아니고 여론을 주도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형편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는 오만이 깔려 있다는 것을 곧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시청자나 독자를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팩트만 전달하면 그들 스스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광고국장을 거치면서 다른 사람이나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후배기자들에게 ‘겸허’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막중한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명예훼손’은 ‘인격적 살인행위’에 해당하므로 명예훼손에 있어서 항상 조심하고 또 회복하는 일에 있어서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리=김창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