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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 이라크 전쟁보도의 그늘

언론 다시보기  2004.05.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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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이라크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부시 미국대통령이 종전(終戰)을 선언한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미·영 제국주의국가들의 이라크 침략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저항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미군과 영국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문제가 잇달아 불거지면서 이라크인들에 의한 ‘저항의 전쟁’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라크인들의 저항의 상징인 이라크인들에 의한 국지전적 폭탄테러가 북부 모술과 나자프로부터 남부 나시리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시도되고 있고, 그로 인한 미군 장병의 사상자가 속출함으로써 이라크에 대한 반전 분위기가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 고조되어 왔다.

이러한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미군에 의해 자행된 팔루자 전투에서 빚어진 대규모 민간인 학살사건에 뒤이어 성난 이라크인들에 의해 자행된 미국 병사의 시신 훼손사건이 있었고, 그 무렵에 자행된 것으로 보이는 린디 잉글랜드 일병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 수감된 이라크 포로에 대한 학대 사진이 지난 5월초 영국의 한 일간지에 공개된 이후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10일 발행된 미국의 시사주간지인 타임과 뉴요커 및 뉴스위크가 ‘디카사진’과 증언을 통해 잔혹한 포로학대 사실들을 새롭게 공개하자 미국 국민들 사이에 부시 대통령의 하야론까지 성급하게 터져 나오고 있기도 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전쟁의 와중에서 미군들에 의해 벌어진 이러한 용서 받지 못할 행위는 이라크전장에서만의 일은 아니었다. 반세기 훨씬 이전 한국전쟁 중에 있었던 노근리학살 사건과 30여 년 전 베트남전쟁에서 있었던 밀라이학살 사건은 미군이 저지른 가장 용서받지 못할 야만적 집단학살의 이름들이다. 인간의 광기를 보여준 이들 야만적 집단학살은 즉시적으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4백여명의 양민을 학살한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이 종전된 지 반세기만인 1999년에 한국 기자인 AP통신 서울지국의 최상훈 기자에 의해 세계적 뉴스가 되었고, 68년 구정대공세 때 5백4명을 학살한 밀라이 사건은 사건 발생 18개월 뒤 베트남전 종군기자인 뉴욕타임스의 세이무어 허시 기자의 양심보도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세계의 주요 언론들은 종군기자와 특파원을 보내 전쟁보도를 했지만 인간의 야만적 집단광기에 대해서는 흔히 침묵하거나 외면했고, 때로는 은폐하기도 했다. 노근리사건과밀라이사건의 경우처럼 주로 브리핑에 의존하는 종군기자들의 특성상 특정의 집단학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해 추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계익 전 동아일보 기자의 자전소설 『소양강은 흐른다』에서 보듯 미군의 피난민 집단학살과 강간 등 집단광기는 노근리에서만 자행되지는 않았다. 그 무대는 천안 부근이었다. 소년의 눈에 비친 용서받지 못할 집단학살은 이처럼 한반도의 여러 곳에서 자행되었으나 한국전쟁 중의 집단학살 뉴스는 한 차례도 보도되지 않았다. 소년의 눈에 집단학살로 비쳐진 기총소사가 전쟁보도를 하는 종군기자의 눈에는 전쟁의 방식으로 이해되었거나 미국의 국가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라크 전쟁보도를 보면서 우리 언론들이 지나치게 미국언론의 질서에 편입된 듯한 보도태도를 보이거나 미국 언론의 시각에서 이라크전쟁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자이툰부대의 파병을 눈앞에 두고 있는 국가적 현실에서 이제 한국 언론은 이라크전쟁의 진실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거짓 없는 올바른 정보를 국민에게 그대로 알려 주어야 한다. 국민의 판단이 전쟁보도의 그늘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 이번 아브 그라이브 교도소 학대 파문 보도의 경우처럼 축소보도를 하거나 ‘뒷북보도’를 하는 것은 추가파병을 앞둔 한국 언론의 정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