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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관행' 이라는 가면-언론의 기사 베끼기

발언대  2004.05.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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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연합뉴스 여론매체부 기자





“거기 연합뉴스란 데 맞습니까? ××일보 기사에 대해서 항의할게 있는데요…” “그런데 왜 ××일보가 아니라 저희 회사에 전화하셨죠?”(기자), “기사를 쓴 기자가 거기로 전화해보라고 해서요…”

취재원들의 표절에는 민감해 하면서도 남의 글을 가져다 쓰면서는 눈꼽만큼의 죄책감도 못느끼는 곳이 우리 언론계인 것 같다. 방송 예능프로그램의 일본TV 베끼기에는 분노를 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대학 교수들의 논문 표절에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지만 정작 스스로는 기사를 훔치는 일을 꺼려하지 않는 셈이다.

언론사들의 기사 베끼기 관행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너무 오래되다 보니 “전재료를 냈으니 크레디트는 안달아줘도 되는 것 아니냐”는 답답한 말도 하게 되고 “그 기사 좀 썼어”라며 전화 한통화의 웃음으로 크레디트를 대신하려는 경우도 생길 수밖에 없다.

전화 한 통 안하고 혹은 전화번호도 모른 채 기사를 쓰고,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의 인터뷰 기사를 쓰고 같은 시간에 두 곳의 현장에 나타나는 식의 신출귀몰한 일은 공포영화가 아닌 지면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최근 연합뉴스의 시론을 한 신문의 사설이 표절한 일은 통신 기사 베끼기 관행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사설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연합 기자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달고 기사를 내보내는 일은 매일매일 너무도 흔하게 또 멀쩡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비슷한 제목과 같은 리드, 똑같은 결론의 문장…. 베끼기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기가 너무나 어려운데 말이다.

지난달 용천역 폭파사고 발생 보도에서도 이를 인용하는 국내와 국외 언론의 보도 태도는 극과 극으로 달랐다. 용천역 참사는 연합뉴스 조성대 특파원이 중국 단둥의 소식통들의 이름을 빌어 쓴 세계적인 특종이지만 국내 언론들 상당수는 연합뉴스 크래디트를 제외하고 자사 기자의 이름을 달아 기사를 내보냈다.

연합뉴스의 보도라고 확실히 밝힌 쪽은 오히려 외신이었다.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 저널, AP통신, 워싱턴포스트지와 CNN, ABC 등 외신들은 연합뉴스의 특종사실을 인정하며 뉴스를 보도했으며 기자의 이름까지 인용한 곳도 많았다. 이같은 사실은 10일 민언련 등 언론단체 주최로 열렸던 용천참사 언론보도 관련 토론회에서도 지적됐던 사항이다.

물론, 이런 베끼기의 관행은‘물먹은’ 기사 중 상당수를 ‘메꿔야’하는 연합뉴스의 기자들도 예외일 수는 없다. 또 비난받을 것은 개인 차원의 도덕성이라기보다는 멀쩡하게 행해지는 관행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사를 베낀 기자와 표절을 당한 기자,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이건 일종의 폭력이며 부인할 수 없는 도둑질이다. 관행이라고, 다들 하는 일이라고, 급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도둑이 될 수는 없지 않나? ‘○○신문에 따르면’ 혹은 ‘∼라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라고 밝히는 것. 그렇게 대단한 도덕성이 필요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