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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장]'2개월'의 교훈

우리의 주장  2004.05.19 10: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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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보는 길은 설레고 불안한 법이다. 그 길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면 설레임이 앞서겠지만, 강요당한 길이라면 온통 불안함 뿐일 것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 3월 12일 이후 63일 동안 우리는 오로지 불안한 마음만 가득 안고 난생 처음인 길을 걸어 왔다. 그리고 그 경험은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을 기각함으로써 끝이 났다. 당초 우려했던 불안함은 상당히 가셨지만, 생채기는 상당했다.

국론은 분열됐다. 내연하던 이념·세대·지역 갈등이 증폭된 결과라지만, ‘너 죽고 나 살기’식의 대결이 극에 달했다. 정치권은 물론, 먹고 살기 바쁜 서민들까지 이전투구에 내몰려야 했다. 언론도 ‘찬탄(贊彈)과 반탄(反彈)’ ‘개혁과 수구’의 이분법 속에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극심한 대결로 치달아야 했다. 그 안에 몸담고 있는 우리 기자들도 본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이 미증유의 싸움에 휘말려야 했다.

물론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무리하다 싶었던 탄핵을 밀어붙였던 야당은 “국민 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하다”며 진일보된 모습을 보였다. 이유야 어찌됐든 탄핵의 빌미를 제공했던 노무현 대통령도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 국회도 국민 대다수의 뜻을 무시하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 등도 우리가 얻은 부산물이다. 탄핵의 와중에서 치러진 총선을 통해 정치 개혁이 한단계 앞당겨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불안함을 담보로 얻은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탄핵 정국을 지나오면서 우리가 깨달은 경험과 교훈을 어떻게 실천하느냐 여부다.

다행히 탄핵 이후 화두는 ‘상생(相生)’과 ‘민생(民生)’으로 요약된다. 이미 17대 총선이 끝난 뒤부터 각 정당은 상생과 민생을 경쟁적으로 외쳐왔다. 노 대통령도 지난 15일 발표한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화합과 상생의 정치’ 및 ‘성장 잠재력 확충과 민생경제 회복’을 화두로 꺼내 들었다. 탄핵 정국의 와중에서 길길이 찢겨진 국민 여론과 아직은 회복 조짐이 요원한 민생 경기를 감안하면 적절한 공감대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아무리 상생과 민생을 소리 높여 외치더라도 방법론이 과거와 똑같다면, ‘오로지 내가 맞다’는 식의 ‘자신만의상생’과 ‘자신들만의 해석에 기초한 민생’을 강요한다면 모든 것이 수사(修辭)에 불과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물론 이념과 철학이 다른 만큼이나 상생의 정치와 민생 경제 회복을 구현하는 방법론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각 정파나 경제 주체들은 먼저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 바탕위에 공감대를 찾으려 노력하고, 최대 공약수를 도출해서 실천하려고 발버둥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또다시 견강부회(牽强附會)식 대결을 지속한다면 지난 2개월은 ‘잃어버린 2개월’이 되고 말게 분명하다.

언론도 예외일 수 없다. 먼저 지난 2개월 동안 자신의 모습이 어쨌는지를 반추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시대의 화두인 상생과 민생에 진력해야 한다. 어느 정파와 어느 경제 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현실과 논리를 왜곡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보다 생산적인 쪽으로 여론을 이끄는 것만이 국민들에게 잃어버린 2개월을 보상해 줄 수 있는 탄핵정국 이후 언론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