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언론다시보기] 김동인의 반면교사적 교훈

언론다시보기  2004.05.19 10:34:40

기사프린트

원용진 서강대 신방과 교수





언론 보도가 이야기체인 바에야 인물을 등장시키는 일은 필연이다. 그래서 보도에서 인물은 항상 중심으로 등장한다.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스포츠 보도에 이르기까지 인물이 사건의 중심에 있음을 적시하고 그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예측하기도 한다. 그런 보도에 익숙한 탓에 인물 논의가 빠진 보도를 접하면 독자들이 당혹감을 느낄 것은 뻔하다.

김동인은 소설에서 인물을 다루는 방법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먼저는 작가가 인물을 완전히 통제하는 방식이다. 작중 인물이 자신에게 맡겨진 운명을 따라 별다른 일탈 없이 소설 속에서 행위하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톨스토이가 작중인물에 완벽한 통제력을 행사한 대표적 작가였다고 김동인은 평가한다. 또 다른 방식은 작가가 인물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다. 작중인물은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릴 때 마다 고뇌한다. 작중인물은 가변적이어서 소설의 방향을 가늠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도스트예프스키가 이 방식을 택했다고 김동인은 평가한다.

톨스토이는 김동인에 의해 도스트예프스키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다. 톨스토이의 인물에 대한 완벽한 통제가 훨씬 더 나은 작품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고 김동인은 본 것이다. 김동인 식의 평가 기준은 소설에서도 인정받기 어렵지만 언론의 인물 다루기에서는 더더욱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언론은 인물을 낀 사건 설명, 예측에서 인물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가 없다. 보도 속 인물은 작중인물도 아니거니와 살아 숨쉬면서 가변적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과거 경력이나 행위를 통해 인물의 행보를 점쳐 볼 수는 있지만 살아 숨쉬는 인물은 늘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언론의 인물 다루기는 통제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언론보도 특히 정치보도에서 인물은 늘 평평한 존재(flat character)로 그려진다. 보도에서 인물들은 매우 정적이다. 보도는 기사를 통해 인물들이 매우 정적이거나 일관되기를 욕망한다. 김동인 식으로 말하자면 한국 언론은 인물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을 강하게 내비추고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보도 말미쯤에서 훈계를 듣는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그를 통해 언론은 계몽의 주체로서 권위를 갖게 되고, 독자들도 계몽의 편에 서는 동지자적 입장을 취하며 우쭐함을 느끼게 된다.

보도 속 인물은 살아 숨쉬는 존재이고, 성장을거듭한다는 점에서 입체적 존재(round character)로 그려져야 한다. 언론은 인물들의 행위 자유도(自由度)를 높여 주어야 한다. 언론은 뻔히 길을 알고 있는 선지자가 아니고, 사회와 같이 사는 궁리를 모색해보는 사회적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인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인물의 가변성을 막는 단정적 보도를 할 권위를 부여받은 적은 없다.

지금과 같이 빛의 속도로 세상이 바뀌고, 예측이 불가능한 때에 이미 갈 길이 정해지는 상황이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정체성을 놓고 일관됨을 논하기 보다는 가변적이고 분열적임을 말하는 정체성 정치학, 사회학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리라. 언론보도에서 등장인물들에 숨통을 열어주고 자신을 더욱 고민하게 하는 그런 기사적기가 지금 절실한 때가 아닐까. 김동인의 평가기준을 반면교사로 삼는 언론의 지혜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