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우리는 라이벌] 법조인도 알아주는 '법조통'

동아 이수형 팀장-조선 이항수 팀장

김신용 기자  2004.05.19 00:00:00

기사프린트

선의의 경쟁…서로 “유능한 기자”

인간적 신뢰 및 생산적 취재 강조





인생에 있어서 라이벌이 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도 성공한 사람일지 모른다. 기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선의의 경쟁은 타성과 진부함을 없애주고 진취적 사고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기를 가다듬고 자기를 발전시키는 최대조건일 수 있다. 특히 낙종과 특종을 맛본 기자라면 라이벌이 밉기도 하고, 좋기도 할 것이다.

본보는 앞으로 ‘라이벌 시리즈’를 통해 기자들의 세계를 생생하게 조망하고자 한다. 먼저 첫 순서로 법조기자만 10년 이상을 한 동아, 조선 법조팀장을 취재했다. 이들은 법조기자들뿐만 아니라 법조인들도 알아주는 ‘법조통’이다.



“10년이 넘도록 취재원과 유착하지 않을 정도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기자지요.” “아주 집요하고 글을 잘 쓰는 유능한 기자입니다.”

법조출입기자들 사이에서 ‘법조기자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동아일보 이수형 법조팀장과 조선일보 이항수 법조팀장이 각기 상대에 대해 내린 평가이다.

두 팀장은 지난 3, 4월에 각각 법조계에 컴백했다. 이들이 컴백하면서 법조기자들뿐만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두 팀장 모두 10년 넘는 법조경험이 있는데다 법조계에 남긴 궤적이 크기 때문이다.

두 기자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우선 법조팀을 이끄는 방식부터 차이가 있다. 동아 이 팀장은 법조팀을 다그치기 보다는 ‘착한 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절대 무리한 기사를 쓰지 않고, 후배들에게 주문하지도 않는다. 부드럽게 조직을 이끄는 스타일이다.

이는 그의 ‘법조 기자관’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법조인들과 신뢰를 쌓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기자로서 승부는 능력이전에 인격”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조선 이 팀장은 몇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그의 일성은 ‘생산적인 취재를 하자’이다.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며 취재하지 말라는 것. 또한 ‘물먹어도 스트레스 받지 말자’고 강조한다. 즉 낙종은 병가지상사라는 것이다. 이 팀장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생각을 많이 하는 기자”이다. 기자는 취재 전에, 사건이 벌어졌을 때 멀리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주량도 다르다. 동아 이 팀장은 애써 술을 마시지 않는다. 폭탄주 3∼5잔 정도가 주량이다. 반면 조선 이 팀장은 ‘법조기자 9년 동안 폭탄주 8천∼9천잔을마셨을정도’로 주량이 세다. 그러나 요즘은 10잔 이상은 마시지 않는다. 팀원들끼리 있을 때에는 음료수로 건배한다. 자폭하지 말자는 것이 이유다.

같은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둘 다 대법원 출입기자로 오전 8시30분까지 출근, 밤 12시에 퇴근하는 등 하루 사이클이 비슷하다. 물론 공식 퇴근시간은 저녁7시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평기자 시절 팩트 확인을 위해서라면 검, 판사 집을 밥 먹듯이 드나들었을 만큼 열정이 있는 기자들이다.

때문인지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에 대한 평가도 같다. “줄을 잘 잡는 정치검사가 아닌 검찰조직에 안성맞춤인 사람들”이라는 것. “인간적 흠이 없고 몸을 아끼지 않는 독한 검사들”이라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대법원 손지호 공보관은 “두 기자 모두 대법원에 온지 얼마 안 되지만 법조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법조경력이 출중한 만큼 법조발전을 위한 좋은 기사들을 많이 써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신용 기자 trustkim@journalist.or.kr









양사 팀장 프로필





동아 이수형 팀장은 법학을 전공하고 1990년에 문화일보에 입사했다.

이 회사에서 5년동안 법조팀에서 일한 이 팀장은 95년 10월 동아로 옮긴 후 2002년 6월까지 법조팀에서 활동했다.

이후 2004월 2월까지 2년 동안 미국 연수를 받았다. 특히 연수기간 동안 미 법학을 공부해 최근 미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조선 이항수 팀장은 영문학을 전공하고 92년 연합뉴스에 첫발을 디뎠다. 이 회사에서 93년 5월부터 법조기자를 거쳐 96년 조선 법조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1년 12월까지 법조팀에서 근무한 후 2002년부터 행자부를 출입했다. 2003년에는 미국연수 1년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