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판결로 이른바 탄핵정국이 종식되고 “상생의 정치”라는 매우 그럴듯한 구호가 나붙었다. 비교적 돈 안드는 선거를 치렀고 신인의 비율이 유례없이 높은 17대 국회는 정말 새로운 생산적 면목을 보여줄 것인가. 드디어 거대 여당을 확보하는데 성공한 노무현 정부는 이제 좁은 의미의 정치에서 해방되어 국정운영에 몰두 할 것인가?
국민의 호된 심판을 받으며 정말 거듭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었던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가 선출된 후 분명히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노당의 원내 진출 또한 국회내 분위기의 쇄신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대권주자들 관리나 보궐선거에 온통 관심을 집중하는 듯한 열린우리당은 총선의 승리에 도취해서인지 종전의 자세를 바로잡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듯 하다.
탄핵소추가 “의회 쿠데타”라는 표현을 정당화시킬 만큼 잘못된 것이었다면 왜 그들은 다른 당의 동료의원들을 설득시키거나 대통령의 사과를 유도함으로서 소추안 가결을 막아내는 일을 해내지 못했는가. 물리적으로 그것을 막으려 함으로써 폭력사태를 유발시키고 국회와 나라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국정상의 엄청난 낭비를 가져온 데 대한 일말의 책임은 져야 함이 마땅하다.
탄핵사태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바로 그 대상이었던 대통령에게 있었던 것은 더 말 할 것 없다. 국민의 지지도가 매우 낮아졌을 정도로 실정을 거듭했기 때문에 야당들이 탄핵가능성이라는 유혹에 빠져 들어갔는데도 소추안 가결을 막을 수 있었던 사과 한마디를 그는 끝까지 거부하지 않았던가.
정치의 쇄신을 위해 무엇보다도 더 절실한 것은 정치를 보는 언론의 시각이 아닌가 싶다. 정치인들에게는 권력이 생명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정치를 곧 권력 장악의 게임이라는 협의로 인식하며 그러한 인식의 굴레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국민에게는 권력투쟁이 곧 정치 일 수가 없지 않은가. 국민이 정치인들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나라의 안위와 번영, 국민들의 복리 향상을 위해 서로 다투어 가며 최선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때로는 특정한 정책 대안이 즉각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경우에라도 지식이나 경험에서 일반 국민 보다 우월한 판단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나라를 운영하고 책임져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정책 대안들이 궁극적으로얼마나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가에 따라 심판을 받는 것이 선거인 것이다. 적어도 언론은 그것을 알고 그러한 방향으로 정치를 유도해 나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정치에 대한 언론의 보도 자세는 어땠는가? 우리의 정치면들은 대부분 중요한 국정 사안에 대한 심층 보도와 정당 또는 정치인들 간의 입장차이 보다는 권력다툼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폭로 사건으로 연일 메워지지 않았는가. 언론은 국정 현안의 우선 순위를 생각하면서 정치와 여론을 건전한 방향으로 주도해 나가는 능동적 역할은 스스로 포기하고 점점 더 남의 치부만을 폭로하는 황색지를 닮아갔고 정치인들이나 다름없이 권력투쟁이 정치의 전부인 듯 한 착각에 빠져들어 감으로서 우리의 정치풍토를 오염시키는데 한 몫을 해오지 않았는가.
탄핵정국 이후로도 벌써 어떤 것이 중요한 국정현안으로 떠올라야 하는가 보다는 누가 대권주자로 부상하는가가 관심의 초점으로 부상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계해야할 만한 일이다.
정치는 곧 권력추구라는 좁은 인식에서 언론이 스스로 해방되지 못하는 한 이 나라의 정치쇄신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