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뒤늦게 이제야 뜨거운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통령이 그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가 이미 이전 후보지가 지정되기에 이른 지점에서 표출되면서 청와대나 여권은 아예 논의 자체를 외면하고 싶어하고 야당들도 국민투표를 향한 움직임의 정치적 득실 문제를 놓고 다시 저울질하기에 바쁜 듯 하다.
반정부적이라고 지목을 받는 몇 몇 신문들만이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서 수도 이전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이 나라 국민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사실 수도권 이전 문제에 관한 한 정치권은 여권이고 야권이고 할 말이 없다. 오래 전부터 거론은 되면서도 관련된 여러 가지 변수의 불확실함 때문에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못하고 있던 수도 이전 문제를 갑자기 노무현 대선 후보가 공약으로 들고 나온 것은 충청권의 표를 잡기 위한 수단이었고, 똑같은 얄팍한 계산에서 야당들도 총선을 앞두고 그에 관련된 법안 통과에 합의한 것은 누구도 부인 못하는 한탄스런 일이다.
이제 논의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수도 이전 같은 역사적 과제를 부동산 투기심리를 부추겨 표를 얻어내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용납해야 하는가, 정부나 정계나 언론계는 수도 이전의 의미와 영향, 그리고 국민 개개인이 짊어지게 될 부담에 대해 국민의 알아야 할 권리를 충족시킬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한 알 권리가 충족되지 못한 상태에는 대선, 총선은 물론 별도의 국민투표를 거친다 해도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는 보장이 되지 못하며 부안이나 새만금 사태 같은 것이 더 큰 규모로 재연되지 않는 다는 보장이 없다. 더구나 이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측은 수도이전에 천도라는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가 다시 단지 행정수도 이전일 뿐이라고 그 의미를 축소하기도 하는 등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여왔다.
정치권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데가 없는 가운데서 통일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로서는 수도 이전은 엄청난 정치적, 역사적 의미를 갖는 일이지 행정 수도 이전이냐 천도냐를 따지는 것은 사실 무의미한 일이다.
새 수도 후보지의 확정을 앞에 두고 있지만 이전의 규모나 정확한 청사진이 어떤 것인지 세금으로 그 부담을 걸머져야 할 국민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예상되는 비용에 대한 추정도 오락가락하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경제는 내리막길을 가는데 미군 철수와 재배치로 국방비와 북한에 대한 관리비는 대폭 증가할 것인데 수도권 인구 분산이라는 목표를 위해 포항공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키우는데 든 비용의 100배가 드는 돈을 지금 이 시점에서 수도 이전 비용에 쓰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국익에 가장 부합한 일인가.
그런 돈이 있다면 늘어만 가는 청년 실업자들을 세계적인 두뇌로 양성해서 세계 무대로 나아가 국익에 기여하게 하는 것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 아닌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수도 이전 문제는 결코 여권 대 야권, 진보 대 보수, 수도권 대 충청권, 이미 투자를 많이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쟁점이 될 작은 사안이 아니고 역사 앞에 책임을 져야 할 중대 사안이다.
국민 투표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정부가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이전의 타당성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한 분명한 청사진을 갖추어 국민의 자발적 동의를 얻을 때까지는 일을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일에 대한 그러한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접근방식을 유도해 낼 수 있는 힘은 언론 밖에 없다. 언론이 국민 편에 서서 언론의 사명을 다 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