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전문기자를 구분할 때 석사냐 박사냐 하는 학문적인 ‘지위’가 기준이 되곤 한다. 그러나 바둑과 같은 대중적인 분야에서는 오랜 경험과 ‘선수’급 실력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 함부로 전문기자 타이틀을 부여하지 않는다.
현재 신문 지면을 통해 바둑기사와 기보 해설을 동시에 쓰는 기자는 단 두 명. 조선일보 이홍렬(55) 기자와 중앙일보 박치문(57) 기자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을 비유할 때 바둑용어로 ‘사는 수’와 ‘잡는 수’, 일반적으로 ‘유화’와 ‘수채화’ 등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두 사람을 라이벌이라 칭하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두 기자는 바둑을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바둑전문기자가 되기까지, 그리고 기사 스타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슷하다는 느낌보다는 뚜렷한 색깔을 통한 차이를 드러낸다.
바둑을 정의할 때 조선 이 기자는 “아마추어 입장에서 볼 때 바둑은 엔터테인먼트라 말할 수 있다”며 “대국자들의 숨은 이야기, 헤프닝 등 기사나 기보를 읽는 독자들의 대다수는 바둑이 취미나 즐거움의 일환임을 항상 염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질문에 박 기자는 “바둑은 인생살이와 많이 닮았다”면서 “용기와 인내의 과정을 겪으며 승리를 향한 나아감과 물러감의 조화는 삶의 중요한 이치와도 같다”고 설명했다.
현재 두 기자의 바둑급수는 조선 이 기자가 아마 5단, 중앙 박 기자가 아마 7단이다. 아마 바둑세계에서는 고수급이다. 세계 최강 기사들의 바둑을 해설하는 데 아무나 할 수는 없는 노릇. 바둑전문기자가 되기까지 조선 이 기자는 20여년의 오랜 기자 경험을 바탕으로 쉬지 않고 바둑에 대한 애정을 발휘했으며 중앙 박 기자는 타고난 바둑 실력으로 대학시절 국가대표 활동을 시작, 각종 관전기, 기보 글 활동을 통해 기자직과 인연을 맺었다.
기자로서 두 사람의 기사 스타일은 화려함과 치밀함이라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 이 기자의 문체는 치밀하다. 조선은 보통 기보를 쓰기 위해 전문 바둑 기사와 평균 3시간 정도의 해설과 토론을 거친다. “백 2를 손 빼면 25까지 수가 난다. 하지만 진짜 큰 실착은 169였다”라는 식으로 분석 형이다. 반면 중앙 박 기자의 문체는 화려하다. “趙 9단이 구름처럼 변화를 일으키며 허허실실의…, 상변 침투에 앞장섰던 흑들은 결국 적진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고혼이 되고 말았다”라는 식이다.
바둑을 좋아하는 수많은 기자들에게 한 수 가르쳐 달라는 부탁에 대해 두 사람은 겸손함을 잊지 않으면서 핵심을 말했다. 조선 이 기자는 “40여년을 바둑과 함께 했지만 나도 궁금한 부분”이라며 “한권의 ‘책’보다 라이벌과의 짜릿한 ‘한판’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 박 기자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사고의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며 “바둑을 두다보면 자기만의 고집에 빠져들게 되는데 만년 5급이 더 이상 발전이 없는 것은 한수 한수 변화를 인식치 못하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두 사람 모두 절대 강자를 지향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평가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박 기자에 대해 이 기자는 “모양이 좋고 맥에 밝은 기력에 매우 충실한 기자”라며 “오랜 시간 바둑 분야에 종사해 빼어난 글 솜씨 갖고 있고 현대적 기보해설 문체를 정착시킨 1세대”라고 치켜세웠다.
칭찬을 들었을까. 박 기자도 “이 기자는 감각이 뛰어난 기자”라며 “바둑을 사랑하는 모습이 기사로 드러나고, 같은 전문기자로서 바둑 관련 기사를 쓴다는 점에서 ‘원군’을 얻은 기분”이라고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