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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 보도 신상공개 '무분별' 예측보도 난무

윤리강령·취재준칙 '있으나 마나'

차정인 기자  2004.06.30 10: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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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기자 “국가 전체가 오보 만들어”





김선일씨 납치 피살 사건을 보도한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이 무분별한 김씨의 신상 공개와 같은 신중치 못한 보도를 일삼았다는 지적이다. 관련기사 2·3·4면



한국시간으로 21일 오전 5시 알자지라 방송이 한국인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돼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내용을 담은 방송을 내보낸 뒤부터 언론들은 대부분 ‘특보체제’로 전환하고 관련 뉴스를 내보냈다. 그러나 이라크 현지 취재가 거의 불가능하고 외교부를 비롯해 각종 단체들도 새로운 소식을 전하지 못하자 언론들은 납치배경과 납치단체, 이라크 현지 반응, 외교부 상황, 가족들 표정 등을 반복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김씨가 미군납업체 직원이라는 점과 목사를 지망하는 기독교 신자라는 내용 등의 신상과 관련된 뉴스를 여과 없이 내보냈다. 또 22일 오후부터는 몇몇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 ‘살아있다’는 데 초점을 맞춰 관련 뉴스를 보도했다. 그러나 23일 오전 2시 외교부가 김선일씨의 사망을 공식발표하면서부터 보도 내용은 달라졌다. 신문들은 이날 새벽 일제히 급하게 기사를 고쳐 인쇄를 다시 하는 등 조치했지만 일부지역에는 명백한 오보가 배달됐다.



이와 관련 동아일보 정치부 박성원 기자는 24일자 ‘기자의 눈’을 통해 우리 언론의 성급함을 지적했다. 그는 일본인 납치사건 때 나타난 일본 언론과의 비교를 통해 ‘납치·유괴·인질 사건에서 피해자 신변 보호와 관련한 기자윤리와 보도준칙’이 우리나라 언론에도 존재함을 강조했다. 박 기자는 “우리 언론의 보도태도 때문에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소중한 목숨이 희생당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본의 한 유력 신문 기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국 기자들이 비공식 루트를 근거로 보도 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며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에 대해 납치범을 자극할지도 모르는 신상을 아무렇지 않게 공개하고 한 국가의 언론 전체가 오보를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도 무책임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MBC 이진숙 기자는 “자아비판이지만 김선일씨 생존 여부와 관련해 언론들이 신중치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22일 오후부터 생존 가능성에 대한 소식들이 전해졌지만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경쟁에 밀리지 않기 위해 보도한 것이 결국 집단적 오보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외대 아랍어과 홍순남 교수는 “언론의 선정적이고 흥미위주식 보도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이번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채 죽음과 관련된 과정, 동영상, 가족들의 오열 등을 마치 중계하듯 보도하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이 같은 △언론 윤리 배제 △선정·흥미위주식 보도 △과당 경쟁으로 인한 오보 양산 등에 대해 언론계 전반은 물론 언론사 내부의 시스템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국언론재단 김영욱 박사는 “김씨의 피살 이후 외교부나 이라크 대사관 등에 대한 책임 전가의 보도들이 많은데 구체적인 원인과 과정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며 “기자 개인들과 언론사간의 네트워크 시스템이 없어 실수를 연발하고 잘못 쓴 기사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서도 예민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언론 윤리 문제에 대해서 언론사 내부의 제도적 장치는 물론 사례들을 학습함으로써 책임감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차정인 기자 presscha@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