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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여기자 세미나 참관기

"여기자 판 주도할 '큰 언니' 부재 아쉬움"

참관기  2004.06.30 1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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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내일신문 기자



북 실상 담은 영상 보며 눈물도



“우리에게는 큰언니가 필요했어.”

26일 아침 제주공항에 모인 우리들은 이렇게 수근댔다. 제주발 서울행 비행기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우리들 마음은 모두 헛헛했다. 2박3일 동안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있었지만 떠나는 마당에 눈길 한번 마주친 적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어느 동료는 “올해 대회에는 공동의 판을 주도할만한 대 선배가 함께 하지 않았다”며 “우리를 모아줄 구심점이 없었기 때문에 2인1조로 호텔방에 갇혀 지내다 왔다”고 분석했다.



제주 서귀포 칼호텔에서 열린 ‘2004 여기자대회’에는 90여명의 여기자들이 참석했다. 이번 대회기간 내내 비가 줄창 내려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세 차례에 걸쳐 열린 세미나는 좋았다. 세미나는 한번 열렸다하면 족히 두 시간을 끌어서 식사시간을 뒤로 밀치곤 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도착한 첫날, 여장을 풀자마자 박승철 사스(SARS)대책위원장이 강연자로 나선 첫번째 세미나가 있었다. ‘국민건강과 의료보도’를 주제로 내건 박 위원장은 사스가 우리나라에 발을 붙이지 못한 것에는 언론의 덕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사스 확산경로를 언론에서 시시각각 보도함으로써 국민들의 경각심과 정부의 방역활동에 도움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강연 말미에 광우병을 거론하면서 ‘광우병’보다는 사태를 정확하게 적시할 좋은 대체 명칭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번도 이 질병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광우병’이라는 이름 탓에 잘못된 인식이 퍼져 일반 농가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언론이 이름을 바꿔주면 시골 농가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9시에는‘대북지원과 언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100여년동안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펼친 유진벨 가족의 일원으로서 95년부터 북한 전역에서 결핵퇴치사업을 하고 있는 인요한(미국명 존 린튼)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장이 제2주제를 맡았다.

인 소장은 순수 백인 외모와 달리 마구 튀어나오는 전라도 원단 사투리로 우리들을 매료시켰다. 그는 전주에서 출생하여 순천에서 자라난 토종 한국인인 것이다. 인 소장은 비보도를 전제로 북한의 실상을 그대로 모인 기자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썼다. 때로 감칠맛 나는 사투리로 때로는 슬라이드 영상으로 또 비디오 동영상으로 무장한 그의 강연은 감동적이었다. 절대적인 의료품 부족사태에 시달리는 북에서는 사이다 병 등에 수액을 넣어 링겔을 만들어서 사용한다. 슬라이드 필름을 통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여기자들의 입에서는 안타까운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엑스레이 선을 온 몸에 맞아가며 결핵진단을 감행하는 북한의사들이 화면에 나타나자 어느 여기자는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 다음 11시에 진행된 제3회 세미나 주제는 ‘2004 여기자의 오늘과 내일’이다. 매 해 되풀이되는 주제라지만 모인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안고 가야할 숙제이다.

박진현 광주일보 문화체육부차장과 이경은 국무총리실 청소년성보호위원회 청소년성보호과장이 참여해 논의를 이끌었다. 박진현 차장이 먼저 언론계에 여성 차별 현황을 개관했다. 다음 순서인 이경은 과장은 “그럼에도 여기자는 남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언론조직의 패러다임을 바꿀것인가 선택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던져주었다. 우리는 두 선배와 허심탄회한 시간을 나누지 못한 것을 떠나는 공항에서도 아쉬워했다.



다음해 여기자대회에는 밤을 새워 우리를 모아주고 보듬어주고 때로 울고 웃으며 공동의 술판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큰언니가 있었으면 한다. 아직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볼 뿐 먼저 손을 내밀어 판을 벌릴 힘이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