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어긋나는 것은 과감히 해체시켜 버려야 한다는 조세희의 말이다. 작가의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생태계 보존 차원을 넘어 오늘의 평안과 미래의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권력 부조리와 대면하는 우리의 보편적 준거로 적용될만하다.
'서울공화국’ 책임자의 행적에 대해서도 그렇다. 나는 한국사회의 유일 메트로폴리탄을 맡은 이명박 시장이 보인 명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발코자하는 사회운동단체들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문과 방송에서는 그 시정의 용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단언한다.
서울에 적을 둔 주요 일간지와 방송사는 시장이 내놓은 각종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홍보 선전하기에 바빴다. 부적절한 유착, 바람직하지 않은 상호의존의 관계를 맺었다.
“물고기 노니는” 청계천 복원이라는 미명하 도심 개발 프로젝트를 서둘렀을 때도, 하이 서울 페스티벌이라는 ‘그들만의 잔치’를 떠들어댔을 때도, 썰렁한 시멘트 울타리 속 잔디 도배된 로터리를 ‘시민광장’이라고 내놓았을 때도, 이를 차분하게 평가 진단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디어의 방관 속 시장의 전횡은 아무도 멈출 수 없게 커졌다. 때문에 권력에 무심한 방송, 시장의 정치적 욕심을 은근히 지원하기 바쁜 신문에 서울시 부실의 책임 일부가 돌아간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서울의 교회와 기독인들은 서울을 지키는 영적 파수꾼임”을 낭독하는 시장의 비극적 오만을 키운 게 누구인가? 견제의 힘을 갖고 있으면서 막상 그 행사를 포기한 신문과 방송이 아닌가?
“서울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는 서울 기독 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 한다”는 기도 방임 죄가 성립된다.
대중교통 개편과 관련해 <중앙일보>가 ‘업적 과시형 전시행정’을 사설로 지적한 것은 옳다. 그러나 “이명박 시장의 취임 2주년에 맞추려고 무리하게 강행했다는 인상”을 넘어선 체계적이고 총체적인 분석은 부재하다. 보수지들은 시장 취임 2주년을 기념하는 홍보성 인터뷰를 싣고자 다툰다. 비판은 서로 미룬다. <한겨레>만 그의 독선적 리더십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뿐이다.
“느린 판단과 무기력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우리에게도 적일 수밖에 없다.” 서울시와 관련해 기자들이 새겨두어야 할 작가의 결론이다. 서울은 한국 내 별개의 도시로 존재한다.
권력의 집적 지점이며, 이런 절대 공간에 미디어가 비판적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마땅하다. 신문과 방송은 시장 취임 1주년에 맞춰 청계천 사업 첫 삽 뜨기 행사를 벌이고 2주년이 되는 날 시내 교통체계를 부실하게 개편하는 서울시를 철저히 감시 고발해야 한다.
‘혁명’과 스캔들, 실적과 상징은 구별되어야 한다. 시장에게서 발견되는 ‘일방적 토건주의’, ‘개발 강박’, ‘이벤트성 발상’은 서울시민만의 로컬 뉴스가 아닌, 서울공화국의 위세에 눌린 이 땅의 모든 민중에게 중대한 사안이다. 독선적 시장과 그의 권력의지를 설파하는 채널 사이의 부당하고 불쾌한 ‘권언 유착’은 청산되어야 한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긴장 관계가 새로 마련돼야 한다. 권력의 부단한 견제, 서울시장과 관련해서도 똑같이 요구되는 미디어 윤리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