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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다시보기]'2003 NYT 프로젝트'

원용진 교수  2004.07.14 09: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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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03년 7월 뉴욕 타임스는 시걸 위원회 보고서를 내놓았다. 허위, 표절기사로 뉴욕 타임스의 신뢰도를 땅에 떨어뜨렸던 제이슨 블레어 기자 사건에 대한 대처방안을 보고서는 담고 있었다.(www.nytco.com/newsroomreports)



시걸 보고서와 함께 발표된 커뮤니케이션 보고서는 여러 내용을 담고 있지만 조직 실패 진단의 으뜸 원인으로 ‘소통부재’를 손꼽고 그에 대한 처방을 내놓았다. 블레어 기자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가 조직 내 소통 부재로 인해 무산되었음을 통탄했다.



언론사 조직과 외부와의 소통부재, 조직 내 부서 간 소통부재, 각 부서 내 상하 간 소통부재, 그리고 부서 내 수평적 소통부재가 중첩되어 블레어 기자 사건이 발생했다고 진단하였다. 언론사 문화의 경직성으로 빚어진 예견된 사건이었음도 고백하였다. 블레어 기자가 대학기자 시절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음을 확인하지 못했던 점, 여러 번에 걸쳐 부서를 이동했음에도 문제점들이 공유되지 못했던 점, 그의 고속 승진에 대해 여러 동료들이 불만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점 등이 소통부재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증거로 대두됐다.



전문직 조직이란 점에서 언론사는 타 조직과는 구별되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 이중적 조직문화란 점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일 터이다. 기자 나름의 독립적 업무수행이 이뤄지지만 관료적 조직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어 조직원을 갈등으로 밀어 넣는다. 날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늘 관행을 쫓아야 하는 의례적 업무수행이 이뤄지고 있어 정체성 혼동을 겪게 한다.



기사에 관한 한 사회적 책임이 우선되는 듯 보이지만 조직 이익 여부에도 많은 신경을 쓰게 해 갈등과 혼동을 가중시킨다. 뉴욕 타임스는 2003년 프로젝트를 통해 이 같은 이중적 문화로 인한 조직원들의 정체성 혼동을 경감시키려 하였다.



프로젝트를 통해 뉴욕 타임스는 사회적 책임을 더욱 강조하고, 조직의 폐쇄성을 줄이고, 기자들의 업무수행 관리가 더욱 자율적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조직 문화를 바꾸어 내겠다는 의지로 읽어도 무방해 보인다. 공공성을 더욱 강조하는 사회 조직으로 거듭나겠다는 천명이기도 하다. 한 신문사의 내부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언론사 조직의 경직성을 고백했으며, 조직문화 개선으로 사회적 책무를 더욱 강건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경청해볼 만한 하다.



한국 언론사들의 조직문화 점검은 흔치 않다. 언론사의 책임자들은 조직문화 점검 대신 조직의 효율적 경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뉴욕 타임스가 효율성 강조로 인해 블레어 기자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고해하고 있음을 인지한다면 조직문화 개선은 결코 가벼이 여겨질 사안이 아니건만 여전히 언론사의 책임자들은 시스템의 효율성으로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자신하는 듯 하다. 갈수록 언론신뢰도가 추락하고 있음에도 조직문화 개선을 통한 신뢰회복이라는 장기적 프로젝트보다는 조직원을 깎고, 옥죄는 조직 효율성에 더 매달리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예상외로 부드러운 행동계획들을 쏟아냈다. 난상토론, 도시락 회의, 칵테일파티, 부서교환, 소재목록공유, 다면평가, 공동체형성, 의견피력, 인격존중, 다양한 계층의 조직진입 등등. 딱딱한 바위의 조직이 아니라 부드러운 흙의 조직이 되는 쪽을 택하였다. 흙의 조직이야말로 온갖 자양분을 빨아들일 수 있는 인간의 얼굴을 한 조직이라는 점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렸던 탓이다. 블레어 기자 사건은 반면교사였지만 2003년 프로젝트는 꼼꼼히 살펴보고 밟아볼 만한 가치있는 교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