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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기자포럼 참관기] 고 문익환 목사 '통일시'에 감동 '뭉클'

북측 안내원과 남한 경제 대화 나눠

참관기  2004.07.14 10: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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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파이낸셜 뉴스 지회장



가는 날부터 굵은 장맛비가 쏟아졌다.

몇 시간 후면 생애 첫 입북(?)과 함께 금강산과 첫 만남이라는 빅 이벤트를 앞두고 들뜬 내 속마음을 꿰뚫고 있듯 빗줄기가 거세게 내리쳐 차분함을 권고했다.



입북이라…. 문득 고 늦봄 문익환 목사님이 떠올랐다. 물론 문 목사가 가슴엔 통일에 대한 열정을 품고, 머리는 방북 후 겪게될 온갖 고통을 애써 무시하며 ‘금단의 땅’ 북녘 땅을 밟았다면, 나는 그런 뜨거움이나 의연함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차원에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위인과 범인은 이렇듯 달랐다.



버스가 속력을 높일수록 금강산은 다가왔다. 버스가 시동을 건지 5시간 20분만에 ‘남한측’ 강원도 고성의 금강산 콘도에 도착했다. 휴대폰, 고배율의 망원경과 캠코더 등을 압수(?) 당했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우리가 실미도 북파 공작원이나 되나….

DMZ 남방한계선을 거쳐 마침내 휴전선을 넘었다. 아, 여기부터는 북한땅이구나. 뭉클한 감동과 원인 모를 긴장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금강산은 정말 영어표기 대로 ‘다이아몬드’ 산이었다. 크고 작은 돌산, 기암괴석, 깊고 유려한 계곡, 맑고 힘찬 물살. 그 아름답고 순수함이 어느 하나, 어느 한 곳에 딴 눈길을 돌리려는 인간의 무례함을 용납하려 들지 않았다.



이튿날인 7월 8일도 날씨가 궂었다. 구룡폭포로 올랐다. 오르는 남측 관광객 가운데 나이 드신 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장맛비로 불어난 폭포 물이 신비감과 함께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경사가 60도 가까운 가파른 철 계단이 잇따른 상팔담으로 가는 길에 예순이 넘어 보이는 노인들이 젊은이 못지 않게 팔팔한 발놀림을 보였다. 동해 바다와 맞닿은 삼일포와 해금강, 그리고 기기묘묘한 만물상, 노천온천 시설을 갖춘 금강산 온천, 손바닥에 불이 나게 했던 평양 모란봉교예단의 종합교예공연도 좋았다.

첫날 숙소인 장전항의 수상 숙박시설인 해금강호텔에서 실시한 기자포럼 ‘6·15 4년, 남북교류와 언론’은 늦은 시간에 실시했음에도 최완규 경남대 북한연구소 부원장의 발제에 이은 참석자들의 열띤 토론은 주최측인 한국기자협회와 언론재단의 기대치를 충분히 만족시켜 줬으리라.



구룡폭포를 다녀온 이튿날 참석자들의 갹출로 마련된 야외 회식자리를 겸한 통일 기원행사도 매우 뜻깊었다. 특히 진행을 맡은 김건일 기협부회장(제주MBC)이 직접 낭송한 고 문익환 목사의 통일시는 통일의 시작은 머리보다 가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9일 마지막날 삼일포, 해금강을 둘러보는 자리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북한측 안내원과 내용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남한의 경제시스템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남한이 너무 수입 의존적 경제체제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었다. 북측 안내원에게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운영원리를 설명했다. 그러나 왜 그래야 하느냐며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문득 어떤 느낌을 받았다. 그래 통일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남과 북은 그동안 ‘이해하기’보다는 ‘이해시키기’에 주력하지 않았을까.

끝으로 금강산과 나의 첫 만남 만큼이나 기자협회 각 시도지역 협회장, 서울지역 지회장들과 뜻 깊은 첫 만남도 소중한 기회이고 추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