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컴퓨터를 켜며] 풍자 사라진 '패러디'

손봉석 기자  2004.07.21 10:39:37

기사프린트

동아일보가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낯 뜨거운’ 패러디 사진을 의도적으로 잘 보이도록 편집했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된 ‘패러디 공방’이 지난주 정가와 언론계를 뒤흔들었다.

특히 박 대표가 의인화 된 ‘특정신문’과 ‘관계’를 가진 후 누워있는 모습을 상징한 영화 ‘해피엔드’의 포스터를 차용한 이 합성사진은 풍자라기보다는 인신공격이나 여성비하에 가깝다는 비판을 들었다.

더욱이 청와대의 행위는 결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실제 사이버 상에서 네티즌들이 만들고 유포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패러디 사진들은 이번에 문제가 된 것 보다 더 극단적인 표현을 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을 ‘플레이보이’의 표지모델로 묘사하기도 하고, 한 여성 국회의원을 근육질의 보디빌더로 패러디 한 경우도 있다.

권력자나 정치인에 대한 풍자와 조소를 담은 패러디 사진들은 디지털기술의 발달과 우리사회를 겹겹이 둘러쌌던 권위주의가 해체되면서 지난 2002년 대선과 탄핵정국을 전후해 비약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날카로운 풍자로 대중들을 미소 짓게 만들던 ‘패러디’가 거꾸로 청와대를 포함한 특정 정치세력에 차용되면서 대립각에 있는 다른 정파나 개인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풍자와 유머는 사라지고 극단적인 비난과 혐오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패러디’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정치적 증오로 가득한 그림과 사진이 점점 강도를 높여 가며 인터넷공간을 접수하는 단계에까지 왔다.

이번 사건도 어찌 보면 ‘이미지만 있고 테마는 없는 정치인’과 그런 정치인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특정언론사의 관계를 직접화법에 가까운 묘사를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풍자는 증오와 구호가 아니라 웃음과 메타포를 지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