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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포럼 '기자협회 40주년, 한국기자를 말한다'

"오만 버리고 실력 있는 기자 되라"

이종완 기자  2004.08.18 16: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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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정신 퇴색…기능 직업인 주류

“시대 맞는 새로운 기자상 만들어야”



<좌담회 참석자>

김사승 서강대 언론연구소 연구원

김중석 강원도민일보 상무이사

백병규 미디어오늘 논설위원

성회용 SBS 사회문화부 차장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

이백만 국정홍보처 차장

이춘발 기자협회 고문

이형균 한국신문방송인클럽 회장

정길화 MBC 시사교양국 부장대우

진성호 조선일보 미디어 팀장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사회=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한국기자협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제39회 기자포럼 ‘기자협회 40주년, 한국기자를 말한다’가 17일 프레스 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개최됐다.

언론계와 관련 학계 등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지난 기자협회 40년 역사를 회고하고 한국사회에서의 기자의 역할과 문제점을 짚어 보기 위해 마련된 이날 포럼에서는 변화된 미래의 저널리스트로서의 기자들의 역할과 임무, 과제와 방향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사회=지난 40여년 동안의 한국기자들은 수많은 언론탄압과 억압, 해고 등의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 기간동안의 한국기자들이 사회 전반에 걸쳐 차지해온 역할과 문제점은 무엇이었나.

백병규=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같은 언론의 자유에도 불구, 기자들의 역할과 기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초라해졌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가혹한 언론탄압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기자 정신이 기자 사회를 이끄는 표상이 됐던 반면 지금은 오히려 기능적 직업인의 모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기자사회는 사회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변모로 지사적 성격보다는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더 중시되는 언론환경의 변화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하지만 문제는 기자적 전문성이라는 것이 결코 과거 가혹했던 시절 온갖 탄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기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기자정신의 바탕 없이는 제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늘의 복잡다기한 사회는 기자들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분야별 전문성이기도 하겠고, 기자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자적 전문성 모두를 필요로 한다.

이백만=오늘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는 내용은 여전히 기자적인 감성을 갖고 있는 제 개인의 의견이지 제가 몸담고 있는 부처나 정부의 공식 의견이 아니라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우리나라 언론발전을 가로막아 온 큰 걸림돌은 ‘여론 몰이 식 저널리즘’ 또는 ‘쏠림현상’이라고 여긴다. ‘우르르 저널리즘’이라는 표현이 더 사실적일 것 같다. 어떤 이슈가 터지면, 거의 모든 매체들이 거의 비슷한 기사로 뉴스보도를 채울 것이다. 최악의 경우 공동으로 대형 오보를 내기도 하고, 특정인이나 특정기업에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를 입히거나 명예훼손을 저지르기도 한다. 우르르 저널리즘의 최대 피해자는 독자이며 시청자일 것이다.

사실보도와 공정보도는 언론의 생명이자, 우리 기자 분들의 영원한 숙제 아닌가. 공정보도는 가치관의 문제가 개재되는 것인 만큼 일의적으로 얘기할 수 없지만, 사실보도는 공정보도의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논평의 근거가 되는 사실(fact)이 왜곡될 경우 공정한 논평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국민의 알권리 실현이라는 기자라는 직업만이 가지는 고유 권한이 잘못 악용된 사례가 그동안 적지 않았다. 이런 탓에 기자에 대한 인식이 사실 일반인들에 있어 그리 좋지 않은게 사실이다. 앞으로 이런 잘못된 인식을 없애기 위한 자정방안은 무엇이 있나.

성회용=언론환경이 정상화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언론개혁 방안 역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기자사회 전반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반 조성 방안과 함께 기자사회 스스로 천착해야 할 부분이 자정방안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자정방안이 거론됐고 실행됐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큰 소리를 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자정방안은 주로 금전적 비리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이제는 정치적 행동에 대해서도 강력한 제약이 필요하다.

이형균=기자들이 본연의 임무에서 일탈하는 데에는 대체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기자와 뉴스원과의 유착이다. 출입처라는 울타리에서 뉴스원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정치부장을 지내면서 바로 청와대의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다든지, 정당을 취재하다가 바로 그 정당의 전국구의원으로 변신하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기자의 자정에는 이런 것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이다. 둘째로 기자의 신분을 이용하여 사회적으로 특혜를 받는다든지 축재를 하는 것이다. 취재로 얻은 회사정보를 이용하여 주식투기를 하는 경우도 물론 있어서는 안 된다. 기자윤리강령과 각 사의 윤리규정을 수습기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비리가 드러난 기자를 회사가 쉬쉬하면서 처리할 것이 아니라 가차 없이 조치해야 한다.



사회=일반국민과 취재원이 느끼는 기자상은 어떤 차이가 있나?

이춘발=88년 세미나에서 성균관대 박정배 교수가 중앙지 기자의 왕파리와 지방지의 똥파리론을 제기한 적이 있다. 누가 더 해악을 끼치느냐고 묻는다면 왕파리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잘못하면 영향력이 큰 매체의 기자일수록 국민이나 국가에 주는 역작용이 크다는 말일게다. 특히 인터넷의 등장과 다채널 매체의 확산 이후 벌거벗겨지는 기자들을 보는 국민과 취재원의 불신과 거부감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본다. 시대 변화에 가장 민감해야할 언론사가 가장 낙후된 관행을 지켜온 것은 이런 왕파리와 똥파리론의 한 몫을 톡톡히 해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오만을 버리고 실력 있고 점잖은 기자상 문화로 만들 때가 됐다고 주문하고 싶다.

진성호=과거 권위주의 시대와는 다를 것 같다. 이제는 기자가 독자나 시청자를 가르치려 들기 보다 양질의 정보를 더 제공하는 게 중요한 시대가 됐다. 현재 국민이 기자를 보는 눈이 그리 따스하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기자는 말보다는 기사를 통해 독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립해 나가야 한다. 솔직히 취재원들은 기자에 대해 과거와 같은 박수를 쳐주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부터 서서히 시대에 맞는 기자의 이미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편집권과 경영권 독립이라는 언론의 가장 단순하고 중요한 원칙이 언론계에 항상 문제가 되고 있다.

성회용=한국의 언론구조는 80년 이후 민주화의 진전과 동시에 언론사들의 산업화,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기자의 위상과 역할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기존 언론매체가 수십 년간 누려온 산업환경의 급속한 변화는 기자들로 하여금 공론장의 파수꾼이라는 기본적인 역할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아울러 언론사 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인한 기자사회 내의 소득격차 역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인은 시민단체와 순수한 매체소비자로서의 시민의 역할이 점점 커져 가고 있다는 점으로 볼 수 있다. 기자가 단순한 게이트키퍼로서가 아닌 전문성을 지닌 정보제공자의 역할이 정립돼야 기자라는 직업이 제 위치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본다. 이와 함께 최근에 노정된 중요한 기자사회의 고민거리는 정치사상적 환경변화다. 과거와는 달리 매체별로 차등화 되는 이념적 스펙트럼 속에서 기자사회가 대립양상으로 치닫는 것에 대한 우려를 자주 갖게 한다. 동시에 매체 특성에 따른 방송과 신문의 대립, 스포츠지와 무가지 간의 갈등처럼 기자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많다. 이는 보수와 진보라는 단순한 성향 구분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진성호=누가 뭐라고 해도 기자는 가장 중요한 존재다. 흔히들 언론사주를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기자다. 독자나 시청자는 바보가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언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자다. 오늘날 한국언론 구조 속에 기자들은 무기력하다는 주장을 하는 이가 많은데 그것은 언론사마다 다를 것이고, 기자의 파워에 따라 다를 것 같다. 기자가 주인처럼 일하고, 독자 편에 서서 지면을 만들 때 그 언론사는 성공한다고 본다. 다만 기자의 중요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면 그것은 시장에서의 불공정 게임이라고 본다.



사회=최근 언론개혁 바람이 언론계의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언론개혁 바람이 불면서 기자들의 위치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

김중석=소수·약자를 외면하고, 부도덕한 스스로에게는 관대하면서도 다른 이의 허물에는 매몰찬 이중적 가치관, 힘을 ‘정의’로 호도하려는 행태를 떨쳐내기 위한 대오(大悟)는 그래서 오늘의 기자들의 몫이어야 한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열려있고 깨어있으며 균형을 추구하는 선비정신은 기자들에게 요구되는 변함없는 덕목이며 실행의 대상이다. 적어도 기자들이 이 시대의 지식인임을 자처한다면 말이다. 기자협회가 그 선단에 서야함은 물론이다.

기자사회가 변해야 한국의 언론이 변한다. 언론이 변해야 사회가 변하고, 사회가 변해야 우리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신학림=외형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정치권력으로부터 언론자유를 어느 정도 쟁취한 지금 과연 기자들이 처한 현실은 어떠하며 국민들로부터 받고 있는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냉정히 돌아보고 자문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언론구조에서 기자가 처한 위치는 위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기자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처한 언론의 왜곡된 구조와 모순에 눈을 돌려야 한다. 기자협회와 언론노조를 비롯한 2백2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언론개혁국민행동이 추진하고 있는 언론개혁 핵심과제도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면 ‘(언론에 관한) 모든 비정상적인 것의 정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신문 분야의 으뜸 과제는 돈 놓고 돈 먹기 판이 돼버린 신문시장의 정상화이고 방송 분야는 공영방송 체제의 유지, 발전이다.

이춘발=69년 동아일보 주간을 지내셨던 천관우 선생은 당시의 언론을 연탄가스에 중독 돼 비틀거리는 현상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35년이 지난 우리 언론의 메이저 신문은 지금의 정부를 상대로 국가의 정체성까지 언급하고 중계할 정도가 됐다. 이건 언론의 도를 넘어 연탄가스에 중독돼 비틀거리는 정도가 된 것이다. 오만함의 극치다. 해당 언론사부터 분명한 정체성을 밝히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본다. 가진 역사만큼 진지하게 비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민희=언론인이라는 존재가 국민들의 알권리를 실현해주는 언론자유의 담당자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사주와 유착해 왔던 언론인에게 우리는 진정한 언론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언론계는 어떤 분야보다 혼돈스러운 상태다. 간혹 정부와 언론이 갈등하는 양상을 관찰하다보면 어처구니없을 때가 많다. 정부는 정부대로 비판받아야하지만 오히려 언론 쪽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론은 갈등에 매몰되거나 정부비판에 치중하다 ‘사실보도’라는 언론본연의 자세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언론인들이 사실까지 왜곡하며 정부와 정치적 반대자들과 싸우기보다는 사실을 기초로 ‘경쟁’하고 비판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민언련이 할일 없는 상황, 민언련이 퍼블릭엑세스 등에 더 힘을 집중하는 행복한 상황이 오기를 기대한다.



사회=점차 기자들의 전문화 문제가 언론계의 새로운 관심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 기자들의 자질이 높아질 수 있도록 전문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이들의 발전을 도모해야할 기자협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토론해달라.

김사승=모든 기자가 전문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지식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여기다 취재경험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전문기자는 취재와 보도의 생산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으며 자신의 퍼스낼러티를 분명하게 갖고 있는 기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국내 언론사들의 전문기자전략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적인 인력관리와 기자직종의 커리어 관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정리=이종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