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시절 척박한 환경이 만든 여러 억압적인 상황이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냈다.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있었던 다양한 뒷이야기.
60년대 폭음의 시절
60년대는 중앙정보부에서 기자단을 집단적으로 조사하곤 했다. 특히 재무부 기자단을 ‘초토화’한 일이 있는데 명분은 기자들의 부패를 조사한다는 것이었다. 사회의 부패만연으로 인해 ‘압력단체’가 된 기자단이 대놓고 금품을 받아간다는 고발이 접수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기자들은 항의조차 못하고 중정에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아야 했다. 하지만 당시 조사를 지휘했던 중정 간부도 후에 부정수출 사건과 관련돼 구속 되면서 기자들에게 감정실린 공격을 받았다.
60년대 언론인들은 기자의 고정된 이미지 하나를 대중에게 남겼다. “기자는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이다. 천관우, 선우휘 등 대표적인 논객들은 장안에서 이름난 ‘주선’이기도 했다.
당시 억압적인 시대상황이 폭음의 한 원인이기도 했지만 석간신문 마감 후에 이어지는 점심시간의 ‘반주’와 조간 마감 후에 마시는 ‘석양주’가 폭음의 또 다른 구조적인 원인이었다.
특히 석간기자들은 부담 없이 시작한 반주가 밤을 새우는 폭음으로 종종 이어졌고 원로언론인 N씨는 회고록에서 석간 간부들의 수명이 조간보다 짧은 경우가 많았다며 그 원인으로 ‘반주’를 지목하기도 했다.
70년대 작문기사 유행(?)
기사경쟁이 극심하던 70년대에는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작문기사’가 유행했다. 단골로 등장한 것은 익명의 ‘관계당국자’, ‘관계자’ 그리고 ‘소식통’ 이었다. ‘관계당국자’가 취재기자와 동창관계인 하급관료인 경우는 그래도 ‘양반’이었고 대부분이 기자 자신일 경우가 많았다. ‘관계자’와 ‘소식통’은 같은 처지에 있는 옆자리 동료기자일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오보가 양산되기도 했다.
70년대 유신독재로 언론계도 찬바람이 불었다. 기사로 필화를 겪는 것은 그나마 나은 경우고 농담 때문에 ‘설화’를 겪은 이도 있었다. ‘자유언론수호’를 외치다 졸지에 해직된 후 ‘동아투위’ 활동을 하던 S기자는 어느 날 여관방에서 지인과 장기를 두다가 상대방이 허를 찌르는 수로 자신을 이기자 “이거 무슨, 모택동 전술이냐”고 농담을 했다. 얼마 후 계엄령 선포로 구속된 S기자를 검사는 ‘모택동 전술’을 운운했다는 이유로 사상범으로 몰아 생고생을 시켰다.
80년대 ‘기사빼기’ 협상
군부 독재시절에는 잘 알려진 ‘보도통제’나 ‘보도지침’ 외에 ‘기사빼기 작전’이라는 것도 있었다. 국가안보 차원뿐 아니라 대통령에게 아직 보고 안된 정책이면 일단 여기에 해당됐다. 대통령도 모를 이야기가 어떻게 나왔느냐는 질책을 두려워한 고위공직자들이 공보관을 동원해 기사 빼기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일선기자와의 협상이 ‘미수’(?)에 그치게 되면 해당 언론사 기자와 친분이 있는 국장급이나 고위 관료가 직접 나서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기도 했다. 새벽까지 편집국장이나 기자의 집까지 찾아가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해당기사를 대체할 다른 기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80년대 취재현장에서는 이전까지 거의 유일한 기사전달 수단이었던 전화를 보완하는 신기한 기계가 두 가지 나타났다. 바로 ‘팩스’와 ‘삐삐’의 등장이다.
한 차장급 기자는 “사회부 기자는 90년대 초까지도 사건이 터지면 전화선과 팩스 확보하는 것이 큰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삐삐는 보급 초기에 기자라는 직업의 ‘끗발’을 보여주는 첨단기기였다. 당시만 해도 고가였던 삐삐를 쓰는 몇 안 되는 직업인 고위관료나 의사와 더불어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작스런 취재에 대비해 삐삐를 비닐에 싸서 목욕탕에 들고 들어가는 기자도 있었고 삐삐소리의 환청에 시달리는 ‘직업병’(?)을 앓는 기자도 생겨났다.
90년대‘성역’무너지기 시작
90년대 이후 언론은 매체수의 증가로 인해 무한경쟁 시대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사회의 민주화로 인해 권위주위 시대에 ‘성역’으로 구분되던 분야들이 하나씩 무너져 취재영역의 확대를 가져왔다. 특히 정치기사는 대통령이나 야당 대표의 잡담이나 농담마저 ‘비보도’를 아무리 전제해도 거의 대부분 기사화 되면서 독자들이 ‘행간’을 읽는 수고는 점차 사라지게 됐다.
또한 독자들도 인터넷 등을 통한 다양한 자료와 정보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 지면서 기자들에게는 취재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해박한 지식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최근에는 주요출입처들이 ‘기자실’을 점차 ‘브리핑룸’으로 전환하면서 기자단 중심의 취재관행도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