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직종이나 동업자들 사이에만 통하는 농담과 야사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기자들은 다양한 정보가 오가고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든 영역을 접한다는 직업의 특성상 진위확인이 안된 야사와 전설이 넘쳐난다.
뉴스진행중 파리가 입속으로
작고한 언론인 L씨는 9시 뉴스의 메인 앵커를 담당하던 시절 스튜디오에서 뉴스를 진행하던 중에 침투한 파리를 쫓느라고 고생을 했다. 달아난 줄 알았던 파리는 뉴스진행 중에 입속으로 들어가는 복수(?)를 감행했고 L씨는 고민 끝에 파리를 그냥 삼켜 버렸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L씨는 또한 ‘백지특보’에 대한 전설도 남겼다.
뉴스진행 중에 갑자기 데스크에 놓고 간 긴급속보를 받고 기세 좋게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하고 종이를 펼쳐 보니 하얀 백지였다는 것이다.
1초도 안되는 시간이 천년처럼 느껴졌고 L씨는 그날 예상가능 한 ‘특보’를 하나씩 되짚어 본 후 당시 한국을 방문중이던 외국 국가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만찬을 하기로 하고 그 현장을 생중계할 것인지 녹화로 할 것인지를 검토했던 것이 떠올라 “네, 지금 청와대에서 대통령 각하와~”로 시작되는 즉흥 멘트를 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의 직감은 맞아떨어져 큰 무리 없이 속보 멘트에 이은 중계가 이어졌다.
노조위원장 해직, 현판 떨어져
경향신문 노조위원장이던 P모 기자를 해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P기자가 팔 다리를 붙잡힌 채 해직에 항의하며 처절하게 끌려 나간 후 언론계에서는 “P기자가 끌려 나간 후 회사현판이 쪼개졌다”, “현판이 갑자기 떨어졌다”, “가판대에서 갑자기 신문이 바람에 날려 날아가 버렸다”는 ‘설화’들이 생겨났다. 이런 설화에 대해 경향신문 관계자는 현판이 쪼개진 정도는 아니고 좀 흔들리긴 했다는 말은 있었다며 “나가다가 몸싸움 도중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신문사 낡은 사옥 ‘악명’
언론사 건물중 가장 낡고 오래된 곳을 꼽을 때면 늘 화제가 됐던 곳은 광화문 동아일보 구사옥이다. 현재 미술관으로 쓰이는 이 건물은 야근기자가 책상에 누워 자고 있으면 배 위로 쥐들이 기어 다닌다는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이 ‘역사적’ 건물마저 감히 1위를 넘보지 못한 낙후건물이 있었다. 현재는 재건축으로 사라진 한국경제신문의 구사옥이다. 이 신문 관계자에 따르면 “일제시대나 6·25 특집 드라마에서 편집국이 나오는 장면을 찍을 때면 동아일보(구사옥) 앞에서 들어가는 장면까지 찍고 실내는 한경편집국에서 찍었다”고 전했다. 이 구 사옥은 한국영화와 드라마 제작비 절감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후 몇 해 전에 말끔한 새 건물로 신축됐다.
중앙일보 정문방향 바뀐 이유
중앙일보 건물은 처음 건축이 됐을 때 산뜻한 이미지로 국내 언론사 사옥들이 지닌 낡고 칙칙한 이미를 불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 건물은 중앙현관이 있을 법한 자리에는 호암아트홀로 통하는 문이 나 있고 정문은 행인들이 보기에 건물의 옆쪽으로 나 있다.
여기에 대해 중앙일보에 근무한 전직 언론인은 “점쟁이인지 역관인지가 문을 그쪽으로 뚫어야 회사가 흥한다고 해서 그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문을 낸 것이라고 들었다”며 “지금 회사자리가 옛날에 모반한 역적들 목을 치던 자리라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옥 터가 ‘역적 목 자르던 자리’라 기가 세서 언론사가 들어선 것이라고 주장하는 언론사는 이 외에도 조선시대 관가가 밀집해 있던 광화문에 위치한 동아, 조선, 서울 등이 있다.
“방송기자 나가고 이야기 합시다”
60년대 취재현장의 특징 중 하나는 당시 ‘뉴미디어’인 방송기자들에 대한 냉대와 차별(?)이 있었다고 한다. 출입처의 실·국장들이 출입기자와 ‘초중고 등록금인상’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한 간담회를 하는 중에도 공공연하게 “방송기자들은 좀 나가달라”거나 “자, 방송기자 나가고 이야기 합시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방송기자들은 기자들의 공식, 비공식적인 모임에서도 차별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동아방송 출신의 한 원로 언론인은 “동아방송 마이크를 들이밀어야 정부발표가 시작이 됐다”며 “방송이 처음부터 신문에 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