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기자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면서도 기자들이 자신의 직업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접하니 우선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많은 기자들이 하루 10시간 이상의 격무에 시달리면서 말이다.
실제로 한국기자협회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전국의 기자 3백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결과 응답자 중 74.5%가 현재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불만족하다는 응답(24.9%)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하루 평균 근무시간을 묻는 질문에는 ‘8시간 이상 근무한다’가 23.6%를 차지했으며 9시간 이상 18.2%, 10시간 이상 32.3%, 11시간 이상 17.9% 등으로 근로기준법 기준시간인 하루 평균 8시간보다 2∼4시간씩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정부부처 등 출입처 대부분이 주5일제 근무를 시행하고 있는데도 과반수를 넘는 기자들이 하루 10시간 이상을 근무하는 것은 아이러니 하다. 기자들은 주5일 근무제의 장점이 어떠니 하며 정작 기사로만 연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근무시간뿐 아니라 기자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기자들이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개혁돼야 할 우선 순위로 꼽히고 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더구나 인터넷의 등장과 다채널 매체의 확산 이후 기자들은 발가벗겨지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수준에서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역할과 기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초라해진 것이다. 또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가혹한 탄압속에서도 살아있던 기자정신이야말로 기자사회를 이끄는 표상이었으나, 지금은 단순 직업인으로 변해가고 있다. 더욱이 국민과 취재원의 불신과 거부감은 갈수록 심화, 이제 기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이 그리 따스하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 기자의식조사 결과는 한 줄기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비록 최근의 불황으로 스포츠지나 지방지를 중심으로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기자들이 많기는 하지만,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기자들이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이는 또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자들이 월급을 많이 받아서, 아니면 개인의 영달을 위해 기자라는 직업에 만족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항상 가능성으로 작용한다. 직업적인 만족감은 지금 우리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언론개혁을 스스로 해 낼 수 있는 동인(動因)이 된다. 기자 사회가 변해야 우리 언론이 변하고, 언론이 변해야 사회가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기자들은 ‘언론개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43.9%가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 반면 잘할 것(27.8%), 잘못할 것(26.4%)이라는 응답은 비슷하게 나타났다. 여전히 언론개혁에 대해 한발 물러나 있겠다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제 언론개혁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이라면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임하기보다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기자 스스로가 나서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 내야 한다. 개혁의 대상에서 개혁의 주체로 자리를 바꿔 앉을 때가 온 것이다.
국민들은 언론개혁이 진척되면 될수록 기자 없는 사회보다는 기자가 살아 움직이는 사회를 원하게 될 것이다.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는 선을 넘어,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으로 기자가 인정받게 될 때까지 힘차게 내달릴 출발점이 바로 지금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