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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긍심 지켜낼 여력 없다"

지방지 위기, 흔들리는 기자 위상

취재부  2004.09.01 16: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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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한 일간지에서 10년 동안 1백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아온 A기자는 최근 별정직 공무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그동안 기자로서 위상과 자부심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며 “하지만 10여년을 함께 해온 선·후배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 기자로서 자긍심을 지켜낼 여력이 없어졌다”고 고개를 떨궜다.



영남지역의 B기자는 지난 5월 학교 교사로 자리를 옮겼다. B기자도 “10여년을 지방지에서 기자로서 최선을 다해 여기저기서 인정을 받았지만 이젠 선배다운 선배와 후배다운 후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다니던 지방지는 최근 1∼2년 사이에 20여명의 기자가 그만두거나 타직종으로 자리를 옮겼다. 편집국내 기자가 50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40% 이상이 퇴직을 한 셈. 그들이 퇴직한 자리에 다른 기자들이 또다시 들어왔지만 이들이 얼마나 버텨낼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생활고 탓에 광고 리베이트도 마다하지 않는 일부 지방지 기자들의 모습은 과거 각 지역에서 비판과 견제를 통해 올바른 기자상을 보여줬던 사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경기·인천지역>

‘불황’이라 불릴 정도로 최악의 경영 상태를 보이고 있는 지방지의 어려움은 수도권이라는 경기·인천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최대 24면을 발행해왔던 경기·인천지역 일간지들은 최근 전체광고의 60%대를 차지했던 분양광고가 건축불경기로 줄어든 탓에 전체광고가 50% 이상 감소, 탄력적 지면운용을 통한 경영절감에 들어갔다.



윤전기가 있는 신문사는 인쇄사업과 출판사업을 병행해 그나마 광고비 절감으로 인한 부족분을 메우고 있고 일부 신문사들의 경우 은행돈을 차입해 신문사 유지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형편이다.



대부분의 지방지들은 올 연말까지 특단의 자구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IMF사태 이후처럼 또다시 대량 구조조정과 임금체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을 내놓고 있다.



경기지역의 한 일간지 기자는 “이젠 마흔살만 넘으면 당연히 명예퇴직의 대상이될 만큼 구조조정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며 “이 짧은 기간동안 기자로서 후배들에게 어떤 가르침이 될지도 의문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충청지역>

충청지역은 그래도 타 지역보다 지방지들의 난립이 적어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계속된 신문시장 침체로 기자들의 평균월급은 타 지방지들과 별반 다름이 없다.



대부분의 지역 일간지들은 상여금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 1백만원 안팎의 임금으로 생활하는 형편이다. 일부 기자들의 경우 자녀의 유치원 교육도 어려운 실정이다.



대전·충남지역 일간지들 중 형편이 가장 낫다는 A일간지는 이달부터 32면 체제에서 24면으로 감면, 앞으로 다가올 경영난을 대비하고 있다.

충북지역도 24면 체제에서 20면으로 감면한 상황이고 편집국 정상 인원의 50∼70%에 불과해 신문발행에만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일간지들은 외간물과 정보지, 시군신문, 마을신문, 웨딩사업 등에 손을 대고 수익원 마련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이마저 공공기관의 협조 없이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10여년을 넘게 한 일간지에서 일해왔다는 C기자는 “부족한 생활비도 문제거니와 적은 인력으로 편집국이 운용되는 것만해도 신기할 따름”이라며 “앞으로도 충원계획이 없다고 하니 내쫓아서 나가는게 아니라 힘들어서 나가는 현상이 잦아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전라·제주지역>

전북지역의 일간지는 모두 8개사로 상당수의 기자들이 기회가 된다면 별정직 공무원이나 학교, 사업 등으로 이직을 고려할 정도로 기자들의 자긍심은 ‘최악’이다.

게다가 2000년 이후 대부분의 전북지역 일간지가 20면에서 16면으로 감면한 상태다.



일부 일간지들의 경우 더 이상 신문시장에서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24면 발행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편집국 정원의 70% 수준을 밑돌고 있는 인력구조상 24면 운용은 기자들의 노동강도만 커질 뿐이다.



광주·전남지역도 상여금은 생각도 못하고 평균 1백만원선의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이다.

이 지역은 분양광고가 전체 광고시장의 60%를 차지한 탓에 건설경기가 좋지 않은 요즘에는 신문사들의 경영난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제주도의 일간지도 2개의 인터넷 신문이 등장하고 관공서 주도의 광고 외에는 별다른 광고도 없는 탓에 광고시장은 더욱 좁아져 광고 수주가 하늘에 별따기가 된지 오래다.



일부 일간지의 경우 광고감소로 경영난이 악화되자 1백만원대의 월급에 취재기자가 편집기자 역할까지 하는 것을 ‘대안’으로 추진하고 있다.

제주지역 한 기자는 “벌써 일부 회원사는 현 위기를 타개하고자 일방적인 무급휴가, 임금체불도 서슴지 않고 있다”며 “도대체 불황의 끝은 어디쯤인지 고민만 거듭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강원지역>

강원지역은 편집국 기자들의 인원동결을 통해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가기 위한 노력에 분주하다. 5%대의 리베이트를 얻기 위한 기자들의 광고 수주노력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강원지역은 지역지가 2개사 밖에 없는 탓에 기자들의 동종업종 이직이 마땅치 않다. 최근 강원지역 일간지들은 24면의 지면을 20면과 24면으로 요일별 탄력운영을 시행 중이다.



<영남지역>

부산지역은 중앙지와 비교해도 처지지 않을 정도의 경영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 30% 정도의 광고매출 감소와 부실광고 탓에 예전보다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평균 연봉이 4천만원이상에 이르며 상여금이 6백% 정도여서 타 지방지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대구·경북지역 일간지는 부산지역과 달리 조직 슬림화를 통한 운영 체제 개편에 들어갔다.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인수자 찾기에 나선 일간지가 있는가 하면 기자들이 직접 광고유치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 지역 일간지들도 일부 모기업 지원이 있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이뤄질지 미지수여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지역 기자들의 전언이다.